16년 끌어온 자살보험금 논란…누구 책임인가
지난 수년간 생명보험업계 현안이던 ‘자살보험금’과 관련해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최종 판결을 내놨다. 올해 5월12일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에 이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럼에도 자살보험금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이 대법원 판결과 별도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행정제재를 가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어떻게 시작됐으며 금융당국과 보험사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논란의 시발점은 과거 보험사들이 판 사망보험 재해사망특약 상품이다. 2001년 동아생명(현 KDB생명)은 사망보험 주계약과 별도로 자살을 포함한 재해로 사망하면 보험금을 일반사망 때보다 2~3배 더 주는 특약상품을 내놨다. 대다수 보험사도 이 약관을 베껴 비슷한 상품을 내놨다. 2001~2010년 10년간 이렇게 팔린 특약상품만 282만여건. 2010년 4월 생보사들은 뒤늦게 재해 범위에서 자살을 빼는 내용으로 표준약관을 개정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일부 가입자는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달라’고 요구했고, 보험사들은 ‘약관에 오류가 있었다’며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 결국 다툼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보험사는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되(5월12일 판결), 소멸시효가 지났다면 주지 않아도 된다(9월30일 판결)고 판단했다.
16년 끌어온 자살보험금 논란…누구 책임인가
대법원의 판결에도 자살보험금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금감원이 대법원 판단과는 별개로 보험사의 보험업법 위반 여부를 따져 제재하기로 하면서다. 제재 대상은 그동안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뤄온 14개 보험사다. 다만 금감원은 지난 5월 대법원 판결 직후 보험금을 주기로 한 7개 보험사, 그렇지 않은 7개 보험사를 구분해 징계수위를 정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소멸시효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룬 7개 보험사는 중징계 대상”이라고 밝혔다.

행정제재를 가하겠다는 금감원의 논리는 이렇다. 통상 피보험자는 보험금을 청구할 때 약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데 보험사들이 이를 악용해 일반사망보험금(주계약)만 주고 특약으로 보장한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사망보험금을 청구하면 ‘약관 준수’(보험업법 127조3항) 규정에 따라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까지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탓에 결국 소멸시효를 넘겨 소비자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그러나 금감원의 잘못도 크다고 맞선다. 2001~2010년 문제가 된 약관을 금감원이 심사했을 때는 문제 삼지 않고 이제 와서 보험사에 책임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소송 등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금감원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감원이 2013년 말 ING생명 종합감사 때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행정제재 시점을 두고서도 말이 많다. 금감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보험사 때문에 제재 절차에 들어갈 시점을 (5월12일 대법원 판결 이후로) 미룬 것”이라고 했다. 반면 보험사들은 “금감원이 수년 전에 자살보험금 미지급이 보험업법 위반이라고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면 보험사들이 따르지 않았겠느냐”고 따진다.

금융권에선 10년간 ‘엉성한 자살보험금 약관’을 방치한 금감원, 법원 판단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미룬 보험사들의 ‘쌍방과실’이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