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가운데)의 설명을 들으며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의 곡예비행을 지켜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가운데)의 설명을 들으며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의 곡예비행을 지켜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언급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사실상 탈북을 권유하는 메시지를 내놓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 주민 여러분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이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제사회 역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는 여러분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朴, “北 우발상황 대비해야”

박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 시대를 여는 데 동참해 주길 바란다”며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하는 대북전략을 시사했다. 그러나 사실상 탈북을 권유하듯 “한국으로 오라”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은 정권을 압박·고립시키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그동안 대북 발언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라며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상황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 급변사태 징후와 관련해서도 “굶주림과 폭압을 견디다 못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고 있으며, 북한체제를 뒷받침하던 엘리트층마저 연이어 탈북하고, 군인들의 탈영과 약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탈북 권유’ 발언을 비판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반도의 모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서 “박 대통령의 기념사를 현장에서 들으면서 나는 섬뜩한 부분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북한의 붕괴와 귀순을 직접 거론하면 김정은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선전포고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늦게 오는 자 역사가 처벌할 것”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에 대해선 “‘늦게 오는 자는 역사가 처벌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이제라도 북한 당국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의 길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변화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늦게 오는 자 …’는 과거 소련의 개혁·개방을 이끈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인용한 러시아 속담이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 10월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개혁과 변화를 거부한 에릭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늦게 오는 자는 인생의 벌을 받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고르바초프의 연설 이틀 뒤 동독 역사상 최대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 한 달 뒤인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으며 이듬해 독일 통일이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소위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은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며 체제 균열과 내부 동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