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빛이 뭐길래…미술인생 50년을 통째로 걸었나
신비로운 빛줄기가 전시장에 가득하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빛다발이 하늘을 향해 꿈틀거린다. 그 빛은 오묘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생명의 숨결마저 느끼게 한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빛은 어느새 노래가 된다. 음악적인 곡선과 울룩불룩한 질감에서 빛에너지가 넘쳐난다. 한평생 화폭에 빛을 피워내고 있는 노화가의 해맑은 집념을 엿본 기분이다.

전통 한지와 부직포, 흙과 광물성 천연염료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빛과 명상의 미학’을 개척한 방혜자 화백(79·사진). 원로 화가는 나이가 들수록 더 강렬한 에너지를 터뜨리고 있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오는 25일까지 ‘성좌(星座)’를 주제로 내면의 긴장과 이완을 빛으로 묘사한 근작 40여점을 전시한다. 명상의 시각으로 빛에 주목한 이들 작품은 작가의 화려한 화업 50여년을 보여준다.

1937년 경기 고양군 능리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전 서울 근교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노래와 서예를 즐겼고,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렸다. 시인이던 사촌오빠는 어린 그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그에게 시문학의 세계를 알게 해줬다.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쓸 생각이었어요. 고교 시절 미술교사인 김창억 선생님을 만나 제 운명이 바뀌었죠.”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1961년 첫 개인전을 열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해 정착했다. 프랑스 남성과 결혼해 평온한 가정을 이루면서 빛을 소재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유럽 화단에 펼쳤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미학적 기질을 깨닫게 한 것은 파리생활이었다고 했다. 파리에서 프레스코화를 비롯해 이콘화, 판화, 채색유리 등 다양한 화법을 닥치는 대로 익혔다. 중국의 석도(石濤)나 팔대산인(八大山人),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같은 대가의 작품 기법도 섭렵해 유년시절 빛에 대한 추억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어릴 때 꽃을 따러 산으로 강으로 다녔지요. 맑은 물속에서 빛나던 돌들이 생각납니다. 수면을 스치는 빛들을 한참 바라보곤 했지요. 그 빛이 그렇게 신비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빛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빛 한 점 한 점을 그릴 때마다 평화를 심는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방 화백은 빛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닥종이와 부직포를 선택했다. 앞뒤로 채색하고, 앞에서 스며들고 뒤에서 우러나는 효과로 빛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일부 작품은 뒷면에 거울을 설치해 빛을 끌어모았다. 동심원이나 띠 모양의 그림은 거울에 반사되는 효과가 더해지며 빛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삶의 고비를 지나 하나의 불처럼, 잘 성숙한 하나의 발효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내가 빛을 그리는 것도, 천체물리학자들이 하늘의 태양과 별을 연구하는 것도 결국은 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세상 모든 것의 끝에는 빛이 있다”고 설명했다. 빛에 대한 느낌을 평생 천착해온 작가의 작품에는 고국과 동료들로부터 일부러 자신을 격리해 지켜온 고독과 신념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 화가의 삶에 대한 열정 역시 저 꿋꿋한 그림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02)2287-359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