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변호사) 개업은 없다.” 김모 검사는 동기들한테 항상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신조는 ‘돈보다 명예’였다. ‘스타 검사’로 유명세를 얻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임관 후 10여년간 가족사진 한 장 찍지 못할 만큼 일에 푹 파묻혔다. 그러나 지금은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수년 전 여권의 유력인사 박모씨 비리를 수사 한 일 때문이다.

“김 검사, 나중에 후회할 일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박씨가 적반하장으로 나왔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대쪽처럼 수사해 지청장 결재도 받아놨다. 기소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새벽 지청이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가 대로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지청장은 “미안하다”고 했다. 수사는 물거품이 됐다. 1주일 뒤 그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불기소 처분’. 그의 마지막 수사 결과다.
[기로에 선 대한민국 검찰] '꽃보직'이 출세로 직결…"윗선 눈치 안보고 일하기 힘들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 공정성은 검찰 개혁의 단골 레퍼토리다. 전문가들은 원인 중 하나가 검찰 인사의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10대 로펌 형사 담당 변호사 1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인사독립’(응답자의 59%)이 검찰 인사제도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검찰 인사는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관장한다. 대기업으로 치면 임원급에 해당하는 검사장 승진 인사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특히 신경을 쓴다는 게 법조계 얘기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사들은 만나면 1년 내내 인사 얘기만 한다”며 “대부분 검사가 다음 인사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상관 눈 밖에 나면 지방 검찰청 한직으로 쫓겨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 부임지를 미리 아는 판사들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윗선의 심기를 거스른 한 검사가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에서 4년간 ‘귀양살이’한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윗선의 정치적 판단 때문에 수사가 엎어지는 일이 허다하다”며 “이런 환경에서 평검사들이 소신있게 일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홍영 검사(서울남부지검) 자살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장인 검찰총장도 예외는 아니다. 1998년 임기제(2년)가 도입된 뒤 임기를 채운 총장은 19명 중 7명에 불과하다. 재직 기간 1년을 못 채운 총장도 7명에 달했다.

검찰 내 요직으로는 법무부 검찰국,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이 꼽힌다. 최근 들어선 금융 관련 부서도 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다.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사건을 수사하면 좋은 보직에 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변호사로 개업해도 이른바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사한 검사 출신들의 몸값이 훨씬 높다. 일부 검사가 아버지, 장인, 정치권 인사 등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꽃보직’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다.

검사 인사 기준 중 하나가 ‘보직 점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지방 검찰청 형사부 검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한 번 요직을 거쳐간 검사는 서울과 수도권 검찰청만 옮겨다니는 ‘그들만의 리그’가 생긴다.

이렇다 보니 검찰 인사에 외풍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검찰총장 임기를 3~4년으로 늘리고, 검사들이 소신 있게 수사하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검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시스템 대신 고검 단위로 검찰을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을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