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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시장서 경쟁력 척도는 '가성비'…원가절감형 기술혁신이 관건

입력 2016-09-30 17:45:36 | 수정 2016-10-01 02:41:51 | 지면정보 2016-10-01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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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경영학 <25> 혁신, 기술축적 그리고 경쟁력 변화

신제품 사업 유망 검증되면 뒤이어 많은 경쟁상품 쏟아져
기업들 원가절감으로 관심 돌려 해외로 공장 이전·아웃소싱
후발국은 기술 모방 기회 생겨

'제조기술 우위' 유지하지 못하면 베트남 등으로 이전 가속화될 듯

정규석 <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기사 이미지 보기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기업의 경쟁력은 제품 품질과 디자인, 원가와 가격, 납기 준수 능력 등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에서 품질과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디자인은 품질에 포함되고 품질의 가장 중요한 특성치는 성능이므로 경쟁력을 더 간단히 말하면 가격 대비 성능으로 표현되는 ‘가성비’라고 할 수 있다.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제품기술과 제조기술(공정기술)이고, 가격 책정의 바탕이 되는 원가를 결정하는 것은 생산성과 임금 수준이다. 인프라 성격의 관리기술은 품질과 원가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다시 생산성은 제조기술과 자본투입도에 영향을 받는다. 자본과 노동은 대체적 관계로, 자본투입도는 임금 수준에 따라 결정되므로 결국 경쟁력은 기술 대비 임금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혁신이란 유입량(flow)이 누적된 저장량(stock)에 해당하므로 기술 발전 속도는 혁신력이 좌우한다. 이렇게 보면 미래 경쟁력의 변화는 혁신력과 임금 인상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경쟁자의 변화 속도와 비교한 상대적 변화 속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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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반도체, 가전, 휴대폰, 조선,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선진국을 따라잡으며 세계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최근 이들 중 몇몇은 후발국의 추격으로 그 위치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경쟁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함께 변화한다. 이런 경쟁력의 동적 변화 과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은 윌리엄 아버나시와 제임스 어터백의 공정, 제품 혁신의 동적 모델이다.

어떤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혁신적 소비자나 초기 수용자적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한다. 그들의 반응에 의해 사업성이 유망하다고 검증되면 뒤이어 많은 경쟁자가 뛰어들고 더불어 많은 신제품이 경쟁적으로 쏟아진다. 그 신제품들은 성능 극대화, 기능 고급화와 다양화 같은 성능 경쟁을 벌이는데 이는 모두 제품 혁신에 해당하므로, 이 시기는 활발한 제품 혁신이 이뤄지는 유동기라 부른다. 제품 변화가 매우 유동적이므로 품질 안정이나 원가절감 같은 제조기술 혁신은 아직 활발하지 않다.

이 시기에는 많은 벤처기업이 시장을 개척하고 활동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가 고갈되며 제품 혁신이 둔화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승패가 결정되며 경쟁자 수가 압축돼 간다. 해당 제품 수요층이 확산되며 점점 시장이 커지고, 고객층의 니즈가 분화하면서 시장이 세분화되고 제품 다양화가 이뤄진다. 경쟁 제품 간 성능이나 기능의 차별화가 줄어들면서 경쟁은 성능에서 가격으로 옮아간다. 이 시기에는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한 원가절감이 경쟁의 핵심이 되고, 이에 따라 대량생산 지향형 공정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시기에는 단편적 자동화 등이 출현하며, 벤처기업이 도태하거나 대기업화하고 대량생산 제조기술과 관리기술이 뛰어난 대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일부 제품·기술 혁신에 능한 벤처기업가들은 사업을 팔아넘기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거나 대기업 경영자로 변신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전용기계 등을 활용한 체계적 자동화가 이뤄진다. 공정 혁신은 둔화하고 제품 혁신은 더욱 약해진다. 제품 혁신은 성능이나 기능 개선보다는 동일 성능이나 기능을 더 싸게 생산하는 원가절감형 기술인 가치혁신(VA/VE)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혁신이 둔화하는 이 시기를 경화기라 부른다.

또 기업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같은 아웃소싱을 활용하거나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다. 혁신이 둔화하고 그에 따라 기술도 포화함에 따라 후발국 기업에도 참여 기회가 생겨난다. 기술은 공식적 기술 이전, 모방 등으로 인해 선도기업에서 후발기업으로 확산된다. 누적된 제품기술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 결과가 축적돼 있으므로 이전이 어렵고, 따라서 후발기업이 쉽게 따라잡기 힘들다. 그러나 제조기술은 설비에 체화된 경우가 많고, 이 설비라는 것들은 많은 경우 별도의 설비제작사가 공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즉 누구나 돈만 있으면 설비를 구매할 수 있다. 턴키 베이스로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기술을 배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설비를 사용하는지와 그 설비의 운전기술만 알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투자했다가 얼마 후 문을 닫고 밀려나온 경우가 대부분 이 상황에 해당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술은 설비에 의존한 제조기술이었기 때문에 쉽게 모방당해서 경쟁우위를 상실한 것이다.

단순 경공업은 제품기술이 별것 아닌 경우가 많다. 반면 복잡하고 고도화한 제품기술을 지닌 대기업은 현지 기업들이 모방하기 어려워 잘 버티는 경우가 많다. 이 단계에서 후발국가 처지에서는 외국 기업의 자국 투자 공장과 자국 기업의 경쟁력 관계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계화 시대는 국경이 의미가 없고, 다국적 기업에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한 국가에서 국적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외국 기업들은 경영 환경이 불리해지면 쉽게 떠날 수 있지만, 자국 기업들은 환경이 불리해져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약을 위한 역량이 축적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환경의 불리한 변화라는 것의 핵심은 임금 인상인 경우가 많다. 특정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 기업을 유치했는데, 성장하면서 임금이 오르면 외국 기업은 더 싼 임금을 찾아서 떠날 준비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경쟁력은 기술 대비 임금 수준이므로 특정 국가에서 동일한 임금 수준을 활용할 수 있다면 기술과 관리역량이 우월한 선진국 기업이 현지 신생기업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기술 및 관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특정 제품에 처음 진출하는 자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그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망, 브랜드 가치,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외국 현지 공장들의 경쟁자가 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보다 낮은 임금, 현지 유통망 및 대정부 관계, 시장 적응력, 지역 간 장벽과 보호 등에 힘입어 결국에는 외국 기업을 경쟁력에서 압도하는 사례를 많이 보이고 있다. 일부 새로운 산업에서는 선진기업들과 동시에 제품 혁신 경쟁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중국의 임금 수준이 올라가면서 중국보다 임금이 싼 베트남과 같은 국가로 기업들이 공장을 옮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신제품 등장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혁신, 기술, 임금의 경쟁력 결정 과정에 따른 국가 간 공장 이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이 해외투자를 확대하면서 국내 공장을 축소하거나 신규 투자를 중단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장근로자들이 분임조나 제안 같은 개선활동을 통해 제조 혁신을 끊임없이 해내며 해외 공장과 제조기술 격차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경영자들은 공장의 해외 이전 문제를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베트남은 과연 '제 2의 중국'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은 외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막고 수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국내 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1960년대에 일본 소니나 도요타자동차가 국내에 공장을 설립했다면 오늘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저개발국이 외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제한한다면 그 국가는 자력으로 영원히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진국의 기술과 후발국의 저임금이 결합하면서 고품질·저가격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과거 후발기업들의 유일한 경쟁 무기였던 저가격의 이점을 자국 기업이 더 이상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중국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무척 크고 지역적으로 보호적인 내수시장이 존재해 내국 기업도 경쟁할 틈새가 있고, 중국인들의 기술 흡수 역량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임금 상승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외 투자가 몰리며 고도성장하고 있는 베트남도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좀 회의적인 것 같다. 베트남의 기술 흡수 역량이 높다고 하더라도 크고 보호적인 시장이라는 첫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는 인도 정도일 것이다.

정규석 <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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