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형준 부장검사(구속)의 ‘동창 스폰서’ 김희석 씨. 그는 사기당한 업체들이 고소하겠다고 항의할 때면 “할 테면 해봐. 내 친구가 부장검사인데 그냥 놔둘 것 같으냐”는 협박을 대놓고 했다. 김씨가 12개 업체로부터 58억원을 뜯어내는 사기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김 부장검사와의 친분에 겁을 먹은 업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진경준 전 검사장(구속)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일하던 어느 날, 일면식도 없던 대한항공 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선 느닷없이 자신의 처남 회사에 일감을 줄 것을 요구했다. 친구인 진 전 검사장에게 공짜주식을 넘겨준 김정주 넥슨 회장도 “검사여서 준 뇌물”이라는 취지로 검찰과 법정에서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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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대한민국 검찰] "의혹만으로도 압수수색 칼날…누가 '괴물 검사' 만들었나"
최근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검사들의 비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검사의 권력을 무서워하거나 그 무서운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줄을 댄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왜 검사를 무서워할까. 법조계에선 △마음만 먹으면 상대방을 털 수 있고(직접수사권) △터는 데 필요한 요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며(포괄적인 압수수색 영장) △털어서 먼지가 나오면 법정에 세울 수 있기 때문(기소권 독점)이라고 지적한다. 검찰이 가진 수사권은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다. 한 개인이나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 같은 수사권을 자의적으로, 명확한 절차와 요건 없이 휘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 유죄 선고 뒤 지난 27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이런 식의 검찰권 행사는 안 된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한 국가의 총리이자 현직 국회의원이었는데도 검찰의 수사 및 기소 과정이 과도했다. 어떤 국민이 이를 납득하겠는가”라고 검찰에 불만을 드러냈다.

기업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업무가 사실상 올스톱된다. 법원에서 내리는 유·무죄 판결과는 무관하다. 검찰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 임원은 “뭐가 나오든 안 나오든 수사 기간 기업은 모든 역량을 수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하는 데 쓸 수밖에 없다”며 “수사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경영상 결정은 올스톱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툭’ 건드리기만 해도 기업은 휘청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의혹만 갖고 벌이는 압수수색 등 구시대적 수사관행이 검찰의 수사권 남용 폐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 114조에는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고인의 성명, 죄명, 압수할 물건, 수색할 장소를 기재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 법 조항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법조인은 거의 없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구체적인 특정 사건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압수수색을 하는 게 아니라, 털고 나서 이제부터 죄가 있는지 찾아보겠다는 게 검찰 압수수색의 현실”이라며 “압수수색 영장을 광범위하게 발부해주는 법원도 문제”라고 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검사들의 권한을 이용하려는 ‘브로커’들이 주변에 모여든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브로커인 이민희 씨(구속기소)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수배를 받고 도주 중이던 올해 초에도 서울지역 한 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법률 상담을 할 정도로 검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이 터진 뒤 서초동에서는 “떨고 있는 검사들이 많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돈다. 힘센 검사에게 줄을 대려는 스폰서들로부터 향응을 받는 관행이 아직 적지 않게 남아있다는 얘기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