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새벽 동이 틀 무렵 산책을 나간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를 가득 느끼며 길을 나서면 머지않아 따스한 기운과 함께 신비로운 영기가 빛의 서막으로 올라온다.

서울 강남역 주변은 오전 6시부터 기업 임원의 출근과 야간경비원의 퇴근으로 시작된다. 길 저편에서는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어학원과 공시학원으로 종종걸음하는 청년, 길 이편에서는 커피점과 브런치점으로 아르바이트하려고 들어서는 청소년, 회사마다 출근 셔틀버스가 속속 도착하며 쏟아져내리는 인파로 붐빈다. 도시의 하루가 시작되는 활기찬 아침 풍경이다.

도시의 하루를 열고 각자의 미래를 향해 구슬땀을 흘리는 우리 이웃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마음 한쪽에서 우울한 생각이 떠오른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테러리즘과 3대 세습의 폭압으로 북한 주민을 공포정치의 암울한 울타리 속에 몰아넣고 강권통치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리한 핵실험을 계속해온 북한 정권의 오늘을 생각하면 이 작은 평화가 한순간 파괴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위기감을 지울 수 없다.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과 지적 영역마저 대체하려는 임박한 미래 앞에서 대량실업과 그 여파로 무기력한 현실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장기화돼 고착되는 경제불황으로 침체되는 성장동력과 이를 대체할 신성장동력이 충분치 않은 현실도 두려움의 대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래도 인간은 아름답다. 인간의 육체적 능력이 기계의 그것보다 못하더라도 인간의 근육과 그 근육이 창조해내는 아름다운 율동은 인간만의 예술인 것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도 알파고에 뒤지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인간이 창조해내는 상상력의 결실은 역사를 바꿔나가는 성스러운 자원이다.

신화와 종교,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 판소리와 탈춤 등 인간의 영혼마다 수놓은 이 아름다운 창조물을 놓고 어찌 사랑과 휴머니즘의 꽃이 피지 않겠는가.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와 산업이 걱정되긴 하지만,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살가운 애정과 긍정마인드, 적극적 사고와 낙천적 마음가짐이 우리 가슴에 남아 있기만 하면 한국의 미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시대의 지혜인 중 한 분인 최재천 교수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새벽을 여는 아름다운 이웃을 바라보다가 우리의 공동체가 그래도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되새겨본다.

조영곤 < 화우 대표변호사 ykoncho@yoon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