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대 은행 도이치뱅크가 유럽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 등 악재가 겹친 와중에 미국 법무부로부터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받으면서 회사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미 법무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도이치뱅크의 부실 MBS 판매와 관련, 지난 15일 140억달러(약 15조8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벌금은 예상 액수의 3배이며 이 회사 시가총액(180억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다.

주가는 연초 대비 50% 넘게 떨어졌다. 27일에는 소폭(0.4%) 반등했지만 장중에는 사상 최저치(10.20유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손충당금이 62억달러 정도에 불과해 독일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제2의 리먼브러더스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총자산 1조8033억유로인 도이치뱅크가 무너지면 독일과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도이치뱅크 위기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4년 유럽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지난해 리보 조작 혐의로 과징금과 소송비용까지 겹쳐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줄고 순이익은 40분의 1로 쪼그라들어 IMF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은행’으로 지목할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벌금 폭탄까지 맞은 것이다.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 증시가 이달 중순부터 약세를 보인 것도 도이치뱅크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였다.

도이치뱅크가 벌금을 다 낼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당초 부과액의 3분의 1만 냈던 골드만삭스 사례를 보면 감면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EU가 애플에 130억유로의 세금을 추징한 직후 미국이 벌금을 매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EU 간 신경전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 독일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구제금융을 주지 않으면 사태가 의외로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유럽발(發) 거품붕괴는 현실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