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2의 반기문'이 나오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올해 말 퇴임하면 국제기구 수장을 맡은 한국인은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한 명만 남는다. 유엔 관례상 유엔사무국에 진출한 한국인 고위직 상당수가 반 총장 퇴임과 함께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유엔에서 한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 총장과 임 총장은 한국이 체계적으로 육성해 국제기구 수장이 됐다기보다는 개인 역량과 운에 의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측면이 크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국인 첫 국제기구 수장인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선진국은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해 국제기구로 진출시키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내년에 3선에 도전하는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68)이 대표적이다. 1972년 일본 외무성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과학원자력과장, 군축비확산부장, IAEA 일본대사 등을 거쳐 2006년 IAEA 이사회 의장이 됐고 2009년 7월 IAEA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일본 정부는 그가 원자력 분야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했고 사무총장 선거에서도 외교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인 일본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체계적인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법률 보건 교육 등 전문분야별로 역량 있는 국내 인재풀을 미리 확보하고 그들이 경험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국제기구에 파견되거나 근무한 인사들이 해당 국제기구와 꾸준히 소통하며 언제든지 그곳의 고위직에 도전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 로드맵도 확보해야 한다. 외교관 인사도 마찬가지다.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는 우리 외교부의 현재와 같은 돌려막기식 인사로는 ‘제2의 반기문’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국내 명망가들도 좁은 한국 정치에 머물게 아니라 세계를 향해 도전하겠다는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반 총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에서 국가 수반이나 외교장관을 지낸 사람들이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전 포르투갈 총리,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전 불가리아 외무장관), 부크 예레미치 전 세르비아 외교장관, 수사나 말코라 아르헨티나 외교장관, 스르잔 케림 전 마케도니아 외교장관, 헬렌 클라크 전 뉴질랜드 총리, 다닐로 튀르크 전 슬로베니아 대통령, 나탈리아 게르만 전 몰도바 외교장관 등이 그들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구테헤스 전 총리는 포르투갈 국회의원 시절인 1991년 포르투갈 난민협의회를 창설하는 등 일찌감치 인권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협력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총리직을 마치고 유엔난민기구(UNHCR) 수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전문성과 식견을 인정받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대선 등 정치판만 기웃거리는 전 총리들이 거론되고 있을뿐 국제기구에 진출하겠다는 인물은 찾기 어렵다. 좁은 국내 정치에 매몰되기보다는 한 나라의 정부를 이끈 경험을 살려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에 헌신하겠다는 큰 꿈을 그려볼 때다.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만큼이나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우리 전직 대통령·총리·외교장관의 도전이 잇따르기를 기대해본다.

정태웅 정치부 차장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