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달리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금품 전달자나 목격자 등 관련자 진술이나 추가 증거가 없다는 점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완종 리스트' 메모 외에는 증거로서 능력을 뒷받침해 주는 '플러스알파'가 없다는 것이다. 녹취록이나 남긴 메모만으로는 부족하고, 신빙성 있는 다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선 혐의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2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검찰은 작년 7월 이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이후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경향신문 사이 인터뷰 녹취록을 핵심 증거로 쓰기 위해 1·2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녹취록에는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 여러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홍 지사에게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전 총리의 혐의는 2013년 4·24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충남 부여 선거사무소를 찾아온 성 전 회장을 만나 3000만 원이 든 종이백을 건네받았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두 사람이 이 전 총리의 선거사무소에서 보좌진 없이 독대했다고 봤다. 검찰 설명에 따르면 돈이 오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성 전 회장과 이 전 총리 두 사람뿐이다.

검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둘 사이 대화가 담긴 녹음 파일 등 다른 직접적인 물증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 전 총리의 혐의를 밝히려면 숨진 성 전 회장의 진술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 전 회장의 진술이라 볼 수 있는 인터뷰 녹취록을 증거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1·2심 판결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1심은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에게 분노의 감정을 품고 거짓된 내용을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녹취록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1심을 깨고 이완구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2부(이상주 부장판사)는 "이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부분에 부합하는 듯한 직접적인 자료는 성완종 전 회장의 전화인터뷰 진술뿐"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 성완종 진술의 허위 가능성(이 전 총리에 대한 불리한 진술 + 성완종 자신과 관련된 내용은 은폐) ▲ 금품 공여자와 수수자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사정'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 진술 일시의 구체성 결여 등을 문제 삼았다.

이런 점에서 재판부는 "성완종 전 회장의 대화 내용 녹음 파일 사본과 녹취서, 메모 사본에 나타난 내용은 '전문진술(傳聞陳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들 중 피고인에 대한공소사실 부분은 형사소송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전 총리 관련 부분은 "증거능력이 없고, 금품 공여자의 직접적 진술이 없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내용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전문진술'은 원칙적으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원래 진술을 했던 자가 사망이나 질병, 기타 사유로 진술할 수 없게 된 경우, 당초의 진술이 특히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을 경우에 한해 그 내용을 전해 들은 자의 진술이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고 형소법은 규정한다.

반면 홍준표 지사 사건은 성 전 회장의 통화 내용 때문에 유·무죄가 엇갈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성완종 전 회장의 진술은 들을 수 없지만, 금품 전달자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지사의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성 전 회장의 생전 진술과 윤 전 부사장 진술을 모두 근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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