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모셔라"…사무관은 주차안내, 차관은 영접대기
27일 오전 8시30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주차장. 감색 양복에 머리를 단정히 빗은 기재부 사무관들이 부처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안내하고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운전석 창문을 노크한 뒤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며 신원도 일일이 확인했다.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이 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20대 국회의 첫 기재부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었다.

같은 시간 기재부 건물 출입구 앞엔 하얀 셔츠에 검은 양복을 말끔히 입은 신사 두 명이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서 있었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영접하러 나온 최상목 기재부 1차관과 송인창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이었다.

이 같은 풍경은 매년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세종청사로 이전하기 전 과천청사 시절부터 사무관급 젊은 관료들은 매년 국감 시즌이 되면 새벽부터 길거리로 나와 서울에서 도착한 의원들의 차량을 안내하고, 장·차관은 의원들을 맞이하는 게 관례로 자리 잡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1948년 제헌의회 이후 국감이란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이런 풍경이 수십년째 관행처럼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부의 국감은 사실상 국감이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국회 소속 상임위원들과 보좌관들로부터 각종 자료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국가 기밀에 가까운 자료도 있고, ‘200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관련 자료 일체’ 등의 막무가내식 요청도 있다. 하나하나 대응하려면 한 달도 부족하다는 게 기재부 관료들의 얘기다.

당일 ‘행사’ 준비는 이보다 더 분주하다. 기재부는 1주일 전부터 국회 기재위 소속 의원 보좌관이나 사무처 직원들과 접촉하며 국감을 위해 내려오는 국회의원 ‘접대’ 준비를 한다. 기재부가 이날 배치한 안내요원은 20명 안팎. 이들은 전날 복장과 용모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국감장에서 증인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연습도 따로 한다.

비단 기재부뿐만이 아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과거에는 의원 개인별로 교통편까지 정부가 마련해 모셔왔다”며 “의원들을 접대하는 고급 식당과 메뉴까지 보좌관들이 일일이 지정해 내려보내곤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이날 국감은 헛돌기만 했다. 조경태 기재위원장과 이현재 간사를 비롯한 여당(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아 국감 개회 선언도 하지 못했다. 오전 10시20분부터 12명의 야당 의원이 입장했지만 개회 선언이 안 된 탓에 속기록에 남지도 않는 의사진행발언만 쏟아냈다.

증인석에 앉은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최상목 차관 등은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뒤에 앉은 40여명의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졸음을 쫓아가며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을 들었다. 야당 소속 기재위 의원들과 고형권 기재부 기획조정실장 등 기재부 고위관료들이 국감 종료 뒤 향한 곳은 농림축산식품부 6층에 마련된 구내식당이었다. 이곳에 차려진 점심을 먹고 각자 ‘더치페이’를 했다. 그동안의 국감과 달라진 유일한 모습이었다.

점심 식사 뒤 야당 소속 의원들은 서울로 가는 각자의 차에 올랐다. 박광온 기재위 야당 간사는 “정치 여건과 여야 간사 간 협의에 따라 못다 한 국감은 다른 날짜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료들은 “오늘 하루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비효율적인 행사를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