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월, 소형 버거 가게 맘스터치가 문을 열었다. 외환위기로 내수시장이 얼어붙은 때였다. 맘스터치는 서울 쌍문동에 매장을 열고 저가 버거로 시장을 공략했다. 같은 해 11월 고급 수제버거를 표방한 크라제버거가 등장했다. 첫 매장은 서울 압구정동에 열었다. 불황에도 고급 버거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8년이 지났다. 두 업체의 운명은 완전히 갈렸다. 함께 토종 버거 프랜차이즈를 내걸었지만 맘스터치는 상장 직전에 와 있고, 크라제버거는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가격과 입지전략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뜨는 맘스터치, 지는 크라제버거…토종 수제버거의 '명암'
◆‘3000원대 버거’ 맘스터치

맘스터치는 처음부터 저가전략을 썼다. 정현식 대표가 파파이스 자회사인 맘스터치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가장 먼저 내놓은 제품은 ‘입찢버거(입이 찢어질 정도로 큰 버거)’로 불렸다.

2005년 출시한 ‘싸이버거’는 큰 패티에 양상추를 푸짐하게 넣었지만 가격은 3200원만 받았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5000원대 프리미엄 버거를 내놓았을 때다. 마케팅 비용도 줄였다. 경쟁사보다 20% 저렴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렇게 가맹점을 919개까지 늘려갔다.

반면 크라제버거는 버거를 요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안심 스테이크를 넣은 ‘크레이지 버거’는 1만5000원이나 했다. 쉐이크쉑 버거 싱글 사이즈(6900원)보다 비싸다. 2010년 매장이 100개까지 늘었지만 패스트푸드업계의 저가 공세를 버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2013년 매장이 10개까지 줄었고,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대학교 주변 파고들며 급성장

맘스터치는 2001년 가맹 1호점을 냈다. 경기 성남시에 있는 경원대(현 가천대)점이었다. 주요 고객층을 대학생으로 잡았다. 이후에도 이런 전략은 지속됐다.

쌍문동에서 시작해 서울과 수도권, 지방에 있는 대학교 주변을 파고들었다. 매장 평균 넓이는 지금도 66~82㎡(약 24평)에 불과하다. 낮은 임차료로 창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싸고 양 많은 햄버거로 인기를 끌었다.

맘스터치는 2012년부터 급성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중요한 소비 코드로 자리잡으며 맘스터치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대학생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맘스터치의 높은 가성비를 알렸다. 이후 3년간 매장이 700개 늘었다.

반면 크라제버거는 직영점에 집중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정면 대결했다. 서울 청담동에선 맥도날드 바로 옆에 매장을 내기도 했다. 광화문, 신촌 등 핵심 상권을 고수했다. 임차료,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드는 고비용 구조였다. 크라제버거는 2011년까지 성장을 이어갔다. 고급 버거가 생소하던 시절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1년 366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양한 수제 버거집이 생기고,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따지면서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해외 진출도 실패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100억원 정도 손실을 봤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브랜드 이미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을 때 고가 정책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며 “재구매율이 떨어지는 데다 매장이 많아지면 본사가 관리하기 더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고은빛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