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26일 롯데그룹 직원들이 서울 소공동 본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26일 롯데그룹 직원들이 서울 소공동 본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장고 끝에 나온 검찰의 선택은 예상과 달리 ‘강수(强手)’였다.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신병처리를 놓고 고민한 지 6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제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검찰과 롯데의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檢 “사안 중대성 고려”

검찰의 영장 청구 방침은 26일 오전에야 최종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재계 5위 그룹의 경영권 향배, 경제 영향 등을 포함한 수사 외적 요인까지 대검찰청과 깊이 있게 토론했다”며 고심이 컸음을 내비쳤다. 이어 “사안의 중대성에 따른 형평성 문제와 사건처리 기준 준수를 고려해 영장 청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영장청구를 하지 않았을 때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을 때 △신 회장이 구속됐을 때를 전제로 여론과 경제적 파장 등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다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대기업을 100여일간 장기 수사해놓고도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는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이 기각할 우려가 있지만 검찰로서는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향후 공판에서 신 회장에 대한 유죄 여부를 다툴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신 회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28일 오전 10시30분부터 열린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 씨 등은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기존 혐의 대부분 제외

검찰은 이날 “롯데 총수 일가가 회사 이익을 빼돌린 금액은 1300억원으로 지금까지 재벌 수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하지만 구속영장에 포함된 혐의 내용만으로는 신 회장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특히 그동안 제기됐던 신 회장의 혐의가 구속영장에 대부분 포함되지 않았다. 애초 신 회장은 일본 롯데에 등기이사로 등록한 뒤 일을 하지 않고 수백억원대 급여를 부당수령한 횡령 혐의를 받았다. 법조계에서 영장 발부 여부를 좌우할 중요 변수로 꼽았던 부분이다. “법리 다툼의 여지가 큰 배임보다는 횡령 혐의가 신 회장의 책임을 규명할 비교적 분명한 잣대”(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라는 점에서다. 이 혐의는 이번 구속영장에서 제외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본 롯데 측으로부터 자료를 받지 못해 해당 혐의가 영장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신 전 부회장, 서미경 씨, 신유미 씨 등 오너일가가 한국 롯데 계열사로부터 500억원을 급여 명목으로 받아갈 수 있게 한 횡령 혐의가 포함됐다”며 “신 회장의 동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는 신 총괄회장이 모든 결정을 했다는 게 롯데 측 주장이어서 검찰이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롯데케미칼의 정부 상대 ‘소송 사기’에 신 회장이 개입했다는 혐의와 롯데건설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도 제외됐다.

검찰 측은 “관계자들로부터 신 회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호텔롯데의 롯데제주·부여리조트 헐값 인수 의혹도 구속영장에서 빠졌다.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계열사를 동원한 470억원대 배임 혐의와 롯데시네마의 임대사업 관련 770억원대 배임 혐의는 포함됐다.

신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부장판사가 맡는다. 조 부장판사는 최근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거나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영장을 기각한 적이 있다.

지난 9일에는 사기와 횡령 의혹을 받는 이장석 프로야구 넥센 구단주의 구속영장을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지난달엔 박동훈 전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의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영장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한신/김인선/고윤상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