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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신뢰의 반경

입력 2016-09-26 18:04:38 | 수정 2016-09-27 01:42:40 | 지면정보 2016-09-27 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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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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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께 캐나다를 지배하던 프랑스는 왕실의 재정난으로 금은 등 금속으로 제조된 정화(正貨)를 식민지에 보낼 수 없었다. 수년 동안 돈이 고갈된 캐나다가 큰 위기에 처하자 당시 총독 자크 드뮬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군인들이 사용하던 게임용 포커 카드를 모두 몰수한 다음 4등분해 장마다 서명한 뒤 ‘법정화폐’로 사용한 것이다.

카드 조각을 돈으로 탈바꿈시킨 파격적인 조치였다. 병사들은 어리둥절해 했고, 백성들도 “경화(硬貨)로 상환하겠다”는 총독의 약속이 담긴 그림 조각을 놓고 의아해 했다. ‘그 약속을 믿어도 되나?’ ‘정말 상환해 줄까?’ ‘카드는 버리고 귀금속만 받아야 하나?’ 그러나 놀랍게도 트럼프 조각은 65년 가까이 캐나다에서 법정화폐로 통용됐다. 이런 거짓말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총독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 덕분이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크면 종잇조각도 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놀라운 교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굳은 믿음이 생기면 무슨 일이라도 추진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이 생긴다. 믿음이 확산돼 사회 전체가 상호 신뢰하는 공동체로 발전하면 갈등과 대립이 사라지고 거래비용이 감소해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필립 키퍼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적 신뢰도가 10%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증가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국의 사회적 신뢰도는 점점 더 추락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 발표보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나 비방에 쉽게 현혹되고, 과학적 지식보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도는 말 한마디에 국민 감정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나타나는 역설이다. 오랫동안 누적돼 온 사회적 불신의 결과일 것이다. 이번 지진 사태는 물론이고 광우병 괴담과 세월호, 메르스 등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허무맹랑한 낭설이 얼마나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 어디에서도 과학적 명제나 합리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사회는 서로 믿고 사는 신뢰의 반경이 너무 좁은 나머지 혈연과 학연, 지연 등 폐쇄적인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하다. 그 신뢰의 반경을 크게 넓히지 않으면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우선 나 자신부터 신뢰받는 언행을 하고, 객관적 합리성과 과학적 논리로 판단하는 습관부터 길러 보자. 더불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신뢰의 반경을 넓혀 나가자.

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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