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하는 영화 ‘아수라’에서 비리 형사 역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 CJ E&M 제공
28일 개봉하는 영화 ‘아수라’에서 비리 형사 역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 CJ E&M 제공
한국 영화계 최고 스타인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가 주연한 액션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에서 좋은 놈 역은 정우성(43) 차지였다. 반듯한 외모에 순수해 보이는 그는 팬들에게 늘 선하고 로맨틱한 남성의 대명사였다. 그가 배우 인생 중 가장 타락한 악인으로 돌아왔다. 28일 개봉하는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에서 이권과 성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 시장(황정민 역)의 뒷일을 처리해주면서 악에 점점 빠져드는 비리 형사 한도경 역을 해냈다. 한도경은 악당의 졸개 노릇을 하는 일조차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26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정우성을 만났다.

“시사회를 본 감독들은 ‘정우성이 아닌 정우성’이 나와 당황했다고 말하더군요. 감정이입이 효과적이었나 봅니다. 연기자들의 팀워크도 부럽다고 했고요. 남성들의 거친 세상에 여성 관객이 더 좋아했어요. 10년, 20년 후에도 회자될 작품이라는 평가에 ‘작업이 잘 됐구나’ 싶어 기쁩니다.”

정우성은 “내 능력의 한계치를 다 쏟아부은 영화”라며 “이름 석 자 앞에 지겹도록 따라붙는 외모에 대한 수식어도 이 영화 한 편으로 뛰어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외모에 대한 찬사에 갇혀있지 않고 넘어서는 것이 배우의 숙제인데 이번 영화에서 그 숙제를 해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다. 여유마저 느껴졌다. ‘아수라’의 예매율은 26일 현재 62.9%로 지난 3주간 극장가를 휩쓴 ‘밀정’(6.8%)을 가볍게 제쳤다.

28일 개봉 '아수라'서 비리 형사 역 열연한 정우성
영화에는 정우성과 황정민 외에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윤제문 등 굵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독종 검사(곽도원 분)가 시장의 악행을 밝힐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한도경을 협박하면서 모든 인물은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정의를 실현해야 마땅한 정치인과 검사, 경찰들이 그려내는 ‘지옥도’다. 한도경은 욕설을 입에 달고 살고 악인들과 대면할 때는 피를 흘리면서 유리컵을 씹는 객기를 선보인다.

“자책과 자해의 행동이죠. (우리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잖아요. 궁지에 몰렸을 땐 자해로 돌파하려는 심리도 있고요. 기존 이미지를 일부러 깨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캐릭터에 맞게 연기했을 뿐이죠. 일부러 망가진 게 아니라 한도경이라는 인물에 걸맞게 행동한 겁니다.”

한도경은 암과 싸우는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뒷돈을 받아도 된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악덕 시장의 비리를 알고 있는 범죄자를 해외로 빼돌린다. 그가 그곳에서 살해당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작은 부도덕함과 범죄 행위는 더 큰 범죄들로 연결된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한도경이란 인물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촬영하면서 깨달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이도 저도 아닌 40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란 걸 말이죠. 그는 미래와 꿈을 상실한 남성이에요. 그런 남성의 스트레스를 표현했습니다. 한도경이란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저의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맞물려 둘(정우성과 한도경)은 금세 합일점을 찾았어요.”

영화는 한마디로 ‘악당열전’이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누구일까. 그는 김성수 감독일 거라고 농담을 했다. 감독 안에 모든 악당이 다 있었으니까 말이다. 영화 속 잔악한 폭력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석했다.

“시스템에 녹아있는 폭력,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으로 불특정 다수, 즉 국민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폭력이 더 심한 것 아닌가요? 그런 무형의 폭력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지를 물리적 폭력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아수라’는 정우성과 김 감독이 ‘무사’ 이후 15년 만에 네 번째로 공동작업한 작품이다. 정우성은 김 감독의 히트작 ‘비트’(1997년)와 ‘태양은 없다’(1999년)를 통해 청춘의 상징이 됐다.

“김 감독님은 현장에서 늘 치열합니다. 배우들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도록 독려하죠. 오랜만의 작업인데도 얼마 전에 한 듯이 자연스러웠어요. 40대는 남성의 전성기라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보다는 잘하는 모습을 감독님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