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차관 워크숍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 해임안 처리에 유감을 밝혔고 25일에는 “해임 건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장·차관 워크숍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 해임안 처리에 유감을 밝혔고 25일에는 “해임 건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후폭풍이 정국을 강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국회를 통과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직무와 무관한 건의를 했다”는 게 수용 불가 이유다. 해임 정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국정감사를 비롯한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3당은 “집권당이 민생을 포기했다”고 비난하면서 정기국회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맞섰다.

여야가 강 대 강 대결로 가면서 정기국회가 멈춰 서게 됐다. 26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의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무력감에 빠져들면서 ‘협치’는커녕 ‘불치’가 심화하고 있다.
< 빨간불 켜진 정기국회 >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에 새누리당이 반발해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함에 따라 정기국회의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켜진 빨간 신호등이 출구가 안 보이는 현 정국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빨간불 켜진 정기국회 >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에 새누리당이 반발해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함에 따라 정기국회의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켜진 빨간 신호등이 출구가 안 보이는 현 정국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야당이 주요 안건을 단독 처리하고, 여당이 표결에 불참한 뒤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기이한 현상이 20대 국회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날치기 처리는 여당 몫, 국회 일정 보이콧과 점거 농성은 야당의 ‘전매특허’라는 공식이 뒤바뀐 것이다.

여당의 보이콧은 20대 국회 시작 이후 이번이 다섯 번째다. 지난 6월 초 원 구성 협상 당시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여야가 대치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1주일간 협상을 거부했다. 지난달 29일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지원 예산을 포함한 증액안을 단독 처리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불참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발언을 문제 삼아 의장실을 점거했으며 국회 일정 보이콧에 들어갔다. 정 의장은 개회사에서 “고위 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 한다”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판했고,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에 대해 소통 부재로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취지로 정부를 몰아세워 중립성 위반 시비를 낳았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개회사에 반발, 김재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도 불참했다. 야당은 단독으로 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단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야당이 해임안을 힘으로 밀어붙인 데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선명성 경쟁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에 대해선 3당 체제에 걸맞은 보다 정교한 조정 능력과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원 구성 협상 당시 국회의장직을 지키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라는 지적이 당내에서 나온다. 주요 현안 처리 때마다 국회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장직을 야당에 내준 게 ‘여당 국회 보이콧’을 가져온 발단이라는 것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당 원로들은 원 구성 협상 때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다른 상임위원장을 양보하더라도 국회의장을 야당에 내주면 안 된다”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 해임안 처리에 앞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가 수리된 것도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여론이 해임안 처리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데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해임안 처리를 강행한 야당에 정국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김 장관 해임안 처리가 야당으로서 승부를 걸 만한 카드였느냐에 대해 당내 일각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정쟁으로 국회가 마비되면 국정감사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를 비롯한 현 정부의 각종 의혹에 대해 총공세를 펴겠다는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방어가 수월하지 않은 여권으로선 정기국회 일정 보이콧이 크게 불리할 것 없다는 관측도 있다. 울고 싶은 참에 야당이 명분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다만 거대 야당의 힘 발휘가 지속되면 박근혜 정부 임기 말 국정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현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법안 처리가 힘들어져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칫 레임덕을 당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넉 달 가까이 됐지만 법안 제출은 급증하는 데 비해 법안 심사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아 당초 내세운 ‘개혁과 변화’가 빈말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