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뒤늦은 무죄들
2004년은 ‘쓰레기 만두’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쓰레기로 버려야 할 자투리 무말랭이로 만두를 만든 25개 업체의 명단이 공개됐고 유통업자들이 구속됐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뒤 관련업체 대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TV에 보도된 무말랭이는 버리기 위해 모아놓은 쓰레기였을 뿐, 만두에 쓰이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억울함은 밝혀졌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심한 곳은 하루 매출의 90%가 감소했고 전국 130여개 만두 제조업체는 파산위기에 처했다. 한 만두업체 사장이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끊은 일까지 있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로 거슬러가면 1989년 우지사건이 있다. 삼양식품이 ‘공업용 소기름’을 사용했다고 해 회사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3개월 영업정지와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됐다. 1997년 대법원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고 한때 업계 1위였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역시 1989년 발생한 포르말린 통조림도 비슷한 케이스다. 가깝게는 지난해 4월 ‘가짜 백수오’ 파동도 있다.

유사한 일이 반복되는 것은 수사기관과 언론은 물론 국민까지도 마녀사냥식 캠페인에 쉽게 동참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한건주의’는 혐의를 마치 사실인 양 발표하고 보도하는 일로 이어지기 일쑤다. 빛의 속도로 확대 재생산되는 비난 여론이 가세하면 관련 기업이나 업종 전체가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런 일은 주로 먹거리에 집중됐지만 최근엔 방산분야에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대법원은 어제 통영함 납품비리 혐의를 받아온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앞서 같은 사건에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과 전 무기중개업체 이사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방산비리 수사가 의욕만 앞선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무리한 수사가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국방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내년도 국방 예산 중 방위력개선비 증가율(4.5%)은 국방중기계획(2017~2021년) 기간 연평균 증가율(7.3%)에 크게 못 미친다. 방산 비리 수사의 영향이 없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번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사건은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좀체 잘 지워지지 않는다. 나중에 아무리 무죄가 선고돼도 돌이키기 어렵다. 수사기관은 사과를 않고 언론은 조그맣게 무죄 사실을 보도할 뿐이다. 잊혀진 무죄는 누가 어떻게 보상하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