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행복한 100세 시대의 필요조건
몇 해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리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책이 있다. 스웨덴 작가 요나슨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2013년에 영화로도 제작됐다. 세계적 베스트셀러답게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1905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열 살 때부터 폭약 회사에 취직해 폭탄 제조 기술을 배운다. 우연한 기회에 고향을 떠나 스페인에서 일하던 중, 자신이 만든 폭탄이 설치된 다리를 건너려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목숨을 구한 것을 계기로 각종 사건에 휘말리며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으로 넘어가 핵폭탄연구소에서 커피 심부름 아르바이트를 하다 우연히 참석한 물리학자들의 회의에서 원자폭탄을 만드는 공식을 푼다. 이후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 중국의 마오쩌둥,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까지 20세기 세계사를 좌지우지한 지도자들은 모두 만나고 다닌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젊은 날을 보내고 고국에 돌아와 양로원에 머물던 중 노인은 100세 생일을 맞아 창문을 뛰어넘어 다시 세상 밖으로 탈출한다.

흥미진진한 노인의 일대기에 기분 좋게 책장을 덮으며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노인이 100세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름대로 세 가지 이유를 찾았다. 우선,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생각이다. 병치레 한 번 안 한 건강한 몸, 위기에 겁먹지 말고 순간을 즐기자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노인은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원동력은 폭탄 제조 기술이다. 그 기술 하나로 그는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었고, 각국의 지도자들이 앞다퉈 그를 찾았다. 얼마 전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이 쓴 《1인 1기》란 책을 읽었다. 저자는 ‘노후를 바꾸는 기적’은 곧 기술이라고 답한다. 고령화 시대에 내 손과 머리로 익히고 배운 기술 하나(1技)가 수억, 수십억 원의 금융자산과 맞먹는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 노인이 스웨덴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스웨덴의 노인빈곤율은 9.3%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노인빈곤율이란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전 국민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의 비율로, 낮을수록 노인의 생활수준이 높다는 의미이다. 이 수치는 근로소득이 끝난 은퇴 시기에 국민연금이나 공공서비스 등 국가 복지정책의 역량이 좌우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 OECD 평균인 12.8%보다 3배 이상 높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노인과 스웨덴의 노인은 구조상 같은 수준의 복지를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2018년이면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사회, 2026년이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 전체가 고령화되면 정부도 고령자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우선 공적 연금에 더해 개인연금과 보장자산으로 스스로 ‘소득절벽기’에 대비해야 한다. 목돈이 필요한 일상 위험에 대해서는 보험 등 보장자산을 갖추고, 소득이 끊긴 상황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추가적인 연금 자산으로 대비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젊었을 때 갖춘 기술과 전문성을 갖고 장기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은퇴 이후에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100세 시대다. 건강한 몸과 밝은 생각, 기술에 기반한 근로소득, 튼튼한 보장과 연금자산,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우리도 100세가 돼도 당당하게 창문을 넘을 수 있다.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