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미디어 뉴스룸-정규재 NEWS] 미국, 90년 전에도 보호무역…결과는 '관세 전쟁'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는 ‘보호무역’이다. 대선 후보들이 민주당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자유무역 때리기’에 나섰다. 자유무역 때문에 미국 경제가 망가지고 일자리가 사라졌으므로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대공황 시기에 제정된 ‘스무트 홀리법’이다. ‘외국의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애국이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과연 스무트 홀리법으로 일자리가 지켜졌을까? 정규재 뉴스에 9월22일 방송된 ‘권혁철 소장의 시장경제로 바라본 경제 사건들-6. 대공항과 스무트 홀리법’에서 권혁철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보호무역은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스무트 홀리법은 1928년 당시 하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이 내세운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높여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에서 시작됐다. 후버 대통령은 전체적인 관세율을 맞추기 위해 농산물 관세를 올리되 공산품 관세를 내리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공산품 제조업자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하원은 1929년 5월 농산물은 물론 공산품에 대한 관세까지 함께 높이는 내용의 법안을 찬성 264 대 반대 147로 통과시켰다. ‘경제적으로 가장 멍청한 법’이라는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인과 제조업자들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였다.

이 법으로 2만개가 넘는 수입품에 최고 400%의 관세가 부과됐다.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다른 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 국가 역시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세계가 보복관세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 결과 경제는 참담할 정도로 망가졌다. 통과된 지 4년 만에 미국의 수입은 1929년 44억달러에서 1933년 15억달러로 66% 감소했다. 수출도 54억달러에서 21억달러로 61% 줄었다. 같은 기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0% 줄었다. 실업률은 1930년 7.8%에서 1931년 16.3%, 1932년 24.9%, 1933년 25.1%로 치솟았다.

권 소장은 “스무트 홀리법은 대공황을 종식시키고 일자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불황을 대공황으로 전환시켜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며 “심지어 대공황을 심화시키고 장기화시켰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비슷한 사례로 2000년 ‘중국산 마늘 파동’을 겪었다. 당시 중국산 마늘 수입량은 1998년 5400t에서 1999년 2만2600t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이로 인해 국산 마늘 농가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아우성을 쳤다. 전남 지역의 한 국회의원은 마늘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취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김대중 정부는 정치권에 떠밀려 세이프 가드라는 칼을 뽑았다. 그러자 중국은 한국의 수출 주력품인 휴대폰 수입을 제한하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산 마늘 파동의 결과는 한국의 백기 항복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권 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물건은 팔고 네 물건은 못 사준다는 식의 보호무역으로는 일자리를 보호할 수 없고 경제도 보호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형진 정규재 뉴스 PD starhaw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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