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조망해야 진실이 보인다. 고구려와 백제 멸망 이후 나당엽합의 당사국 신라와 당나라는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670년부터 6년간 이어진 나당전쟁이다. 당나라는 옛 백제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한반도 직할통치 의사를 분명히 하고, 백제왕자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해 신라와 맞선다.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34) 원나라의 일본정벌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 이유

부여융은 백제에 우호적이었던 일본에 파병을 요청하고 지원군을 받을 만큼 세력이 탄탄했다. 고구려, 백제의 멸망이 곧바로 신라의 삼국통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라의 전력이 강성하기는 했지만, 세계 최강의 당나라와 1대1로 부딪힐 정도는 아니었다. 같은 시기, 당나라의 서쪽 변경 토번(티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당은 주력군을 서역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친 이유 가운데 하나다.

1274년, 원나라 2만명 고려군 5000명, 900척 병선의 일본원정군이 마산항을 출발한다. 대마도 정벌까지는 성공했으나 이후에 몰아친 갑작스런 폭풍우로 원정은 실패로 끝난다. 폭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당대 최강 원나라 몽골기병에게 일방적으로 당했을 터이다. 일본이 이 폭풍을 ‘신이 보낸 바람(神風: 가미카제)’라고 부른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1281년 2차 원정은 15만 병력 4400척의 병선으로 규모가 늘었다. 2차 원정대도 급작스런 태풍에 일본에 상륙조차 하지 못했다.

월남에 발 묶인 원나라

그렇다면 왜 3차 원정은 하지 않았을까? 베트남 때문이다. 대월국 진왕조가 지배하던 베트남은 원나라의 침공을 물리쳤다. 1283년 1차 침공, 1284년부터 4년간 이어진 2차 침공으로 원나라는 하노이까지는 점령했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게릴라전 산악전에 군대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는 ‘일본정벌’보다 ‘베트남정벌’이 더 다급했던 것이다.

현대사에서도 전체를 조망해야 진실이 드러나는 예를 찾아보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날은 1945년 8월 8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틀 뒤다.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일본은 수습불능의 치명상을 입는다.

이 일만 놓고 보면 소련은 ‘무임승차한 나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1944년 6월 6일에 시작된 미국 중심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나치 독일의 쇠락을 불러왔다. 주력부대를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나누어 투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동부전선에서 나치독일을 괴롭힌 상대가 바로 소련이다. 1938년 8월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서부유럽을 거의 평정했다고 판단한 독일은 1941년 6월 소련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가 바로 독일과 소련 간에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지속기간 6개월 이상, 각국 100만 이상의 병력이 참가했고 양국 모두 70만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민간인 사상자 4만을 합치면 무려 150만의 인명이 사라진 것이다.

독일군은 소련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장성급 23명을 포함, 9만 명 이상이 투항한다. 소련은 1943년 이후 공격으로 전환, 서쪽으로 진군하며 독일군을 압박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군은 10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거의 독일과의 전투에서 발생한 숫자다. 독일군도 소련과의 전쟁에서 총 600만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미국 영국 등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는 100만 명이다.

나치 독일은 소련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극동아시아의 상황만 보면 소련은 ‘무임승차한 나라’지만, 2차 대전 전체를 놓고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소련의 북한점령은 무임승차?

참고 사항 하나 더. 몇 년 전 개그콘서트 한 코너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우우우 우우’로 시작하는 장엄한 노래가 있다. 2차대전의 전몰자를 기리는 소련 노래다.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이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이 기립해서 경의를 표한다. 우리 관광객이 러시아를 방문해서 우연히 이 노래를 들을 때, 개그콘서트를 떠올리며 밝은 표정으로 웃지 마시기를 바란다. 불필요한 문화적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