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50년 만기 국고채 발행, 지금이 적기다
금리가 사상 최저다. 금리 간 차이도 미미하다. 국고채 30년물(연 1.62%)과 10년물(연 1.59%) 폭이 불과 0.03%포인트다. 장기물 발행을 늘려 재정자금 조달을 안정화시킬 기회다. 정부가 초장기 50년 국고채 발행을 구상 중인 이유다. 국내 생명보험회사도 반긴다. 생보사는 영업 속성상 장기부채 보유비중이 높다. 신(新)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 보험사 부채평가기준이 장부가격에서 시장가격으로 바뀐다. 시가평가는 부채규모를 늘린다. 늘어난 부채만큼 장기자산을 더 매입해야 리스크가 상쇄되지만 마땅한 장기채권이 부족해 고민이 크다. 50년 만기 국고채 발행은 그래서 청신호다.

이런 장점 말고도 50년 국채 발행은 의미가 큰 중대 사건이다. 첫째, 초장기 회사채 시장이 새로 열리게 된다. 31년부터 50년 만기까지의 금융상품 거래시장은 예전에 없었다. 위험자산에 가격을 매기는 시발점은 국고채(안전자산)다. 50년 만기 국고채가 있어야 50년 만기 회사채를 얼마에 팔지 답이 나온다. 회사채가 적정가격에 발행되도록 기준점(벤치마크)을 제시해 주는 거다. 한국전력은 1996년 3월 200억원 규모의 10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연 8.28% 고정금리다. 100년간 1조8000억원을 갚아야 할 처지다. 조기상환을 애걸하지만 채권 보유자가 응해줄 까닭이 없다. 연 8.28%가 적정 발행가격이었을까. 벤치마크(100년 만기 국고채)가 없으면 발행비용이 비싸진다. 기준점도 모르는 상황에서 매입자가 요구하는 조건은 모두 들어줘야 하니까. 무모한 시도다.

둘째, 재정정책 여력이 보강된다. 국고채의 장기물 구성비만 높여도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 재정정책 여력은 ‘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빚의 최대치’(a)에서 ‘지금의 부채’(b)를 뺀 개념이다. (a)를 늘리거나 (b)를 줄여야 재정정책 여력이 커진다. (b)를 줄이는 긴축재정은 이따금 경기를 위축시킨다. 국가부채비율도 높아진다. 유럽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무턱대고 나라 빚을 줄이기보다 (a)를 키우는 정책이 한 수 위다. 50년 만기 국고채 발행이 (a)를 확대시키는 길이다. 금리가 오른 시점에 만기 도래한 단기국채가 좋은 예다. 높아진 금리로 차환 발행해야 한다. 필요한 금액을 못 구할 수도 있다. 50년 장기국고채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차환 리스크는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 다음이 핵심이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시가로 평가한 나라 빚이 줄어든다. 국가가 더 많은 부채를 떠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금리인하는 부채비율을 높인다. 하지만 금리의 추가 하락 가능성은 미미해 보인다. 대내외 금리가 바닥 수준이다.

셋째, 우리 경제의 위기대응 능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국채시장 만기구조 장기화에 따른 재정정책 여력 확대는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높인다. 국가신용등급이 상승하는 거다. 국가신용등급 상승의 최대 수혜자는 기업이다. 해외에서 발행하는 국내 기업 채권의 몸값이 올라간다. 채권 발행비용도 절감된다.

그런데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 소리가 들린다. 초장기물 발행은 정부를 도덕적 해이에 빠뜨린다는 거다. 손자 세대로 나라빚이 떠넘겨지니 정부가 부채관리에 소홀해진다는 우려다. 이런 걱정에 옳은 측면이 있지만 압도될 것까지는 없다. 국가채무한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이내로 묶는 법률(재정건전화법)이 입법예고 중이다. 도리어 ‘45% 상한’이 과도하게 엄격하다는 견해가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지켜야 할 상한은 60%다(‘안정 및 성장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손자 세대에 미칠 부담도 지나친 걱정이다. 오히려 작아질 수 있다. 50년 뒤 지급할 이자가 현재의 초저금리로 고정되니까. 미국 중앙은행(Fed)은 금리 인상시기를 저울질 중이다. 역사상 가장 낮은 금리에도 발행 못 하면 과연 언제가 적기일까. 일본은 영구채 발행까지 논의 중이다. 구더기 무서워 정작 중요한 장을 못 담가서야 되겠나. 50년 만기 금융시장을 가질 때다.

강태수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