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람 없이' 미래 준비하는 두산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 캠페인 광고는 한국 경영학계에서 기업 캠페인의 성공 사례로 꼽혀 왔다. 두산에 좋은 평판과 우수한 인재를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캠페인은 박용만 전 두산 회장이 취임한 2009년 시작했다. 광고 문구도 박 전 회장이 직접 썼다고 한다. 두산의 ‘따뜻한 리더십’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었다. 6년간 17편이 제작됐고 매년 광고상을 탔다. 2012년엔 박 전 회장이 직접 ‘올해의 카피라이터상’을 받았다.

박정원 두산 회장 취임 후 캠페인이 바뀌었다. ‘두산은 지금, 미래를 준비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미래 먹거리에 초점을 맞춰 에너지, 워터, 건설장비 세 편을 제작했다.

두산의 광고대행사 오리콤에 따르면 이 광고는 박 회장이 직접 지시하고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한다. 두산의 미래 산업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두산이 강조해 온 인간중심적 가치는 캠페인에서 빠졌다.

두산이 새 캠페인을 시작한 데는 구조조정이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많다. 두산은 지난 2년간 대대적으로 인력을 감축해 왔다. 올 6월 기준 두산 계열사 여섯 곳의 직원 수는 1만6852명으로, 작년(1만9870명)보다 3000명 이상 줄었다.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뼈아픈 결정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면벽 대기발령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박 회장이 취임한 뒤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그룹 실적은 개선됐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는 별로 밝지 않다고 말하는 두산 직원들이 꽤 많다. 광고 문구가 바뀐 뒤 직원들 사이에서 “캠페인에서조차 사람을 잘랐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 캠페인은 기업의 가치와 철학을 대중에 알리기 위한 활동이다. 그룹의 미래를 강조한 새 캠페인 광고가 두산이 그동안 내세운 인재경영 이미지를 퇴색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사람을 강조하던 두산의 철학은 ‘기업은 이윤이 아닌 사람을 남긴다’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소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닐까.

이수빈 생활경제부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