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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아이] '용감한 아빠' 아니어도 '좋은 아빠'이고 싶다

입력 2016-09-21 10:40:39 | 수정 2016-09-21 11: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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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쓰기 어려운 아빠의 육아휴직
아이 울음 곱씹어볼 수 있는 나라 되려면
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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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김봉구 기자 ] 세 살배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블록 쌓기가 제 마음대로 안 됐던 모양이다. 손에 든 블록을 내던지며 서럽게 울었다. 제 딴엔 떼쓴 것인데도 부모 눈에는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그 모습에 웃어버렸다.

하지만 아내는 웃지 않았다. 어른 눈에는 귀여운 투정이지만 웃음을 참았다고 했다. 어쩌면 아이에겐 생애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슬픈 감정 아니었겠느냐고, 웃지 않은 이유를 귀띔했다. 아내는 “웃어버리면 혹여나 아이가 감정의 혼란을 겪을까봐 그랬다”고 덧붙였다.

아이 눈높이에서 교감하는 것,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 고개가 끄덕여졌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나도 그랬다. ‘난 이렇게 슬픈데 가족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구나’ 싶을 때 머릿속으로나마 가출을 꿈꿨었다.

아내는 출산 후 1년간 육아휴직을 썼다. 많이 힘들어했다. 한 생명이 온전히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중압감을 몇 번씩 털어놨다. 그러나 그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아내는, 아이의 울음에 섣부른 타자의 웃음 대신 공감의 침묵을 택하는 내공을 쌓았다.

아이의 울음을 곱씹어보는 아내와의 시각차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시간 부족 탓이 크다.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듯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와의 공감대를 만들고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 역시 대체로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한다.

아기 울음이 끊긴 나라가 되어가는 원인 중 하나가 ‘아빠의 부재’란 생각을 한다.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골든타임’이고, 가정을 안정기지로 만드는 금쪽같은 시기다. 야근과 술자리, 회식 등으로 아버지를 뺏는 우리사회의 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한다.”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도 최근 대책을 내놨다. 개중 눈에 띄는 것이 남성 육아휴직 장려책이다. 내년 7월부터는 남성 직장인이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쓰면 석 달치 급여를 최대 월 200만원까지 지원키로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의 육아휴직은 난망하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4872명이었다. 전체 육아휴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그쳤다.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 “돌아올 자리가 있겠느냐” 따위의 말을 듣는 분위기에서 육아휴직을 쓰는 ‘용감한 아빠’가 되기란 쉽지 않다.

임금보전 지원책, 좋다. 다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문화다. 가치관이다. 그리고 시간이다. 늙어가는 나라를 한탄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세태만 탓할 게 아니라, 아이로 인해 힘들어하고 또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아빠들에게 줘야 한다. 아이의 울음을 곱씹어보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용감한 아빠가 될 각오를 해야 하는 문화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근본적 변화는 현실이나 숫자가 아닌 가치관이 변할 때 일어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란 시구(詩句)처럼,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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