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권력 시장으로의 환원'이 경제민주화다
대통령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경제민주화’가 다시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그 일환이다. 경제민주화 입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인식론에 의하면 주관적으로 확실한 것은 지식이 될 수 없다. 신학과 신앙의 차이가 이를 웅변한다. 신학은 논증이 필요하지만 신앙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고백함으로써 끝난다.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는 정치용어로서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던 적이 없었다. 일종의 신앙으로 논증 없는 확신이 전부였다. 경제민주화는 혼란스럽게 쓰여 왔다.

경제민주화 개념이 독일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노동자의 경영 참여’ 내지 노·사·정 합의에 기초한 ‘협조적 행위’로 해석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해석은 이와 다르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를 자임하는 김 의원 논리는 이렇다. “경제력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넓어져 경제세력을 정치세력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경제세력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경제력이 강해지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경제의 민주화라는 표현을 넣은 것이다.”

경제권력은 무엇인가.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계속기업(going concern)’이 될 수 없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줘야 생산비를 회수할 수 있고, 투자자가 회사채 또는 주식을 사줘야 자본을 조달해 공장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경제권력은 ‘기업 경쟁력’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경제권력은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견제한다. 과거 초일류 기업이던 노키아, 코닥, 소니 등이 몰락했다. 이는 기업 경쟁력, 즉 경제권력이 ‘상수(常數)’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한다고 하지만, 정치권력에 의해 기업이 부침을 겪어 왔지 기업이 정권을 부침시킨 적은 없었다. 의도된 과장이다.

김 의원이 말한 대로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1주1표가 아닌 1인1표’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기업을 협동조합화’하는 것이 김 의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아닐 것이다.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경제의 의사결정 권한을 당사자인 경제조직에 돌려줘야 한다”는 해석이 논리에 맞는다. ‘87체제’를 계기로 군사정부에서 민간정부로의 전환을 꾀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는 ‘관주도에서 민간주도’로의 경제운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88헌가13)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23조 제1항, 제119조 제1항에서 추구하고 있는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보장하는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질서이므로, 국가의 규제와 통제를 가하는 것도 보충의 원칙에 입각해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내지 시장경제질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사유재산제도와 아울러 경제행위에 대한 사적자치의 원칙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될 뿐이라 할 것이다….” 사유재산과 사적자치가 경제 질서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재벌 규제 일변도의 경제민주화로는 청년 실업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소액주주와 노동자의 경영 감시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발의된 상법개정안은 진부하다. 글로벌 기업에 소액주주는 한국의 주주가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귀족노조의 전횡을 견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재벌 규제는 규제당국만 살찌울 뿐이다. 정치권은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한국 경제는 3년 연속 2% 저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래 먹거리는 오리무중이고 주력 산업은 쇠락하고 있다. 반전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규제완화, 노동개혁 등을 통해 관료·노조 등에 집중돼 있는 경제권력을 시장에 돌려주는 경제운영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없이는 경제 활력을 되찾을 수 없다. 정치권이 움켜쥔 경제권력을 놓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