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정치권의 ‘쪽지예산(지역 민원 예산)’ 요구가 부정청탁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쪽지예산도 부정청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예산 심의 과정에 반영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반면 국회는 정상적인 의정활동으로 봐야 한다며 쪽지예산을 계속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쪽지예산 '김영란법' 위배? 적법?
정부 “더 이상 쪽지예산 못 받아”

기재부 예산실은 오는 28일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회에서 쪽지예산을 요구할 수 없는 법적 근거가 생긴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률 자문을 거쳤다”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협의해 최종 지침을 마련할 예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쪽지예산도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근거는 김영란법 5조8항이다. ‘보조금·출연금·교부금·기금 등의 업무에 관해 법령에 위반해 특정 개인·단체 법인에 배정 지원하거나 투자·예치·대여·출연·출자하도록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도 부정청탁 대상이다. 정상적인 예산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쪽지예산도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회 “쪽지예산은 김영란법 예외”

국회의원들 생각은 다르다. 쪽지예산은 김영란법이 금지하는 부정청탁의 예외조항, 즉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 목적으로 법령·정책 등을 제안·건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이 예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라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며 “쪽지예산은 당연히 허용된다”고 강조했다. 한 야당 의원은 “국회의원이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김영란법 위반이라면 정부도 국회에 의견을 낼 수 없다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애초 부정청탁 예외조항이 쪽지예산을 위해 생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김영란법 원안에는 국회의원이 예산 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도 부정청탁에 해당된다고 명기돼 있었다. 그러나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법안이 수정됐다.

여전히 모호한 김영란법

법조계에서는 김영란법이 모호해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김영란법에는 예산 편성과 직결된 조항이 없어 쪽지예산도 적용되는지 불명확하고 예외조항의 ‘공익목적’도 무엇인지 불확실하다”며 “앞으로 관련 판례를 쌓아 가며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을 총괄하는 권익위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김영란법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개입하는 것을 부정청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예산 지원을 요구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적어도 국회 예결위 안건에 올리지 않은 예산 사업은 최종 예산안에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는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각 상임위원회를 거쳐 예결위 심사를 마친 예산 사업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예결위 최종 단계에서 의원들의 쪽지예산이 예산안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었다. 위법이지만 처벌 조항이 따로 없어 정치권에서 선심성 예산 사업을 집어넣는 데 이용돼 왔다.

김주완/유승호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