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주인공 롤라 역을 맡은 정성화는 “클래식한 창법에 팝 발성을 가미한 나만의 색깔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주인공 롤라 역을 맡은 정성화는 “클래식한 창법에 팝 발성을 가미한 나만의 색깔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뮤지컬계에서 정성화(41)는 ‘믿고 보는 배우’로 꼽힌다. 1994년 SBS 3기 공채 개그맨 출신인 그는 TV 드라마의 감초 역할로 얼굴을 알린 데 이어 뮤지컬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03년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고, 2007년 ‘맨오브라만차’의 돈키호테로 처음 주연을 꿰찼다. 이후 ‘영웅’의 안중근, ‘라카지’의 수다스러운 게이 아줌마 자자,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최정상급 뮤지컬 배우로 활약 중이다. 풍부한 성량과 성악적 창법, 뛰어난 무대 장악력으로 배역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한다는 평가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11월13일까지) 중인 뮤지컬 ‘킹키부츠’에서는 드래그 퀸(여장남성) 롤라 역으로 무대를 누비고 있다. “너 자신이 되어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친다”고 외치는 롤라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걸 즐긴다. 화려하고 야한 차림의 정성화가 코믹 연기를 펼칠 때마다 객석에선 폭소가 터진다.

“웃기는 연기는 세계 어떤 롤라보다 잘해낼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기대하지 않은 부분에서까지 ‘빵빵’ 터져서 놀랐습니다. 제 애드리브(즉흥 연기)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실은 치밀하게 계산해서 하는 연기입니다. 아무리 공연에 익숙해져도 애드리브는 지양하는 편이에요.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는 것’, 그게 제 인생의 목표거든요.”

뮤지컬 '킹키부츠' 주인공 여장남자 롤라역 정성화
그는 13년차 뮤지컬 배우다. 이제 개그맨이란 꼬리표를 충분히 지웠을 만한 시간이 아니냐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지난 13년간 제가 만난 관객을 다 합쳐도 방송 시청률로 치면 5%가 채 안 될 거예요. 그것도 주 무대인 서울·경기권에 해당하는 얘기죠. 지방 분들이나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성화는 여전히 ‘개그맨’일 뿐입니다.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가벼운 역할만 잘하는 것 아냐?’란 선입견을 깨기 위해 정말 죽기 살기로 연습합니다.”

그는 롤라 역을 제안받았을 때 롤라의 밝은 모습 뒤에 숨겨진 상처를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라카지’와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동성애 연기를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발성이었다.

“미성의 테너 박종호 씨의 음반을 들으며 노래를 익혀서 그런지 벨칸토 창법(성악 발성법)이 몸에 배었거든요. 그런데 팝가수 신디 로퍼가 작곡한 킹키부츠 음악을 소화하려면 팝 발라드 발성이 필요했습니다. 첫 연습 때 같은 배역을 맡은 강홍석이 짙은 솔풍 음색으로 노래를 ‘휘어잡는’ 모습을 보고는 ‘괜히 한다고 했나’란 생각이 들며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어요.”

그 길로 대중가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트레이너를 찾아가 보컬 레슨을 받았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그는 “내 색깔을 완전히 없애진 않았다”며 “성악 창법을 바탕으로 팝 발라드의 감성을 가미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노래를 잘하는 배우’라기보다는 ‘노랫말을 잘 전달하는 배우’라고 강조했다. “뮤지컬 넘버(삽입곡)에는 인물의 심정, 마음의 변화 등 기승전결이 담겨 있어요. 이런 노래의 여정을 치밀하게 분석해야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너무 잘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어요. 노래에 묻혀서 감정 전달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한창 대화가 무르익자 그의 말투와 손짓이 어느새 롤라로 변해 있었다. “평소에도 자꾸 롤라처럼 말하고 손짓하게 돼요. 어머니가 걱정하십니다. 오죽하면 ‘딸 아이 키우는 아빠임을 늘 잊지 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하.”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정성화는 “영국 뮤지컬 배우 콤 윌킨슨은 일흔이 넘어서도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역으로 무대에 선다”며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할아버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