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달부터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시중은행이 고민에 빠졌다. 집단대출의 문턱이 갑작스레 높아지면 은행 자금 운용에 병목 현상이 생길뿐더러 수익성 확보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통해 집단대출에 대해서도 소득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집단대출 심사 강화에 은행권 '난감'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행정지도를 통해 다음달부터 중도금 집단대출 때 차입자 개인별 소득확인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은행은 그러나 개인별 소득을 확인하겠지만, 이를 대출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

집단대출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받는 데다 시공사(시행사)가 연대보증을 서고 토지도 담보로 잡는 등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지금까지 차입자의 소득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전체 대출자의 40%가량에겐 소득서류 없이 지점 추천서를 첨부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출해주고 있다. 장기 연체자 등 명백하게 부실이 예상되는 경우만 중도금 대출을 거절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득서류 확인을 통해 무리하게 다수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차입자나 명의를 빌려줘 주택을 분양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차입자 등을 심사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상환 능력이 의심되는 차입자에게 대출할 경우 은행이 손해를 볼 위험은 적지만 책임 추궁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차입자의 소득과 기존 부채 현황을 파악하면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상환 능력이 의심되는 개인에게는 대출을 자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은 아직 뚜렷한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소득 기준 등에 대한 세부 지침을 내린다면 그대로 따라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소득에 따라 중도금 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적용할지에 대해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차입자들은 새 주택에 입주하면서 중도금 대출을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하는 비율도 제법 높기 때문에 장기 우량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 은행들이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에도 정부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일선 영업현장에서 신규 대출이 계속 이뤄졌다. 지점별 한도가 모자라면 같은 은행에서도 두세 개 지점이 공동으로 한 사업장의 입주민에게 대출하거나 여러 은행에서 한 단지의 대출을 공동으로 실행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주택분양업계에선 앞으로 은행권이 대출심사를 강화하면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대출 문제로 분양권 전매를 위한 투자 수요가 위축될 경우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분양시장 분위기가 얼어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