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쌀 수확기를 앞두고 농협이 재고 소진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올해 대풍년이 예상되는 가운데 햅쌀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지난해 이전에 수확한 쌀값은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9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관 앞마당에서 ‘한가위 농산물 직거래 한마당’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농협은 LS엠트론, 넥센타이어, CJ제일제당 등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지난 8월부터 실시한 ‘우리 쌀 애용 캠페인’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다. 26개 기업이 10억원 상당의 우리 쌀을 구입했다. 고객에게 우리 쌀과 떡을 사은품으로 증정해온 구두회사 바이네르의 김원길 대표이사는 우리 쌀 애용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앞서 8월에는 ‘우리 쌀 특별판매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고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와 온라인쇼핑몰 농협a마켓 등을 통해 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쌀을 팔기도 했다. 농협주유소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500g 소포장 쌀을 사은품으로 나눠줄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8월 한 달 동안 대대적인 판촉 행사를 벌인 결과 지난 7월 말 기준 33만7000t이었던 농협의 쌀 재고량은 한달 만에 20만9000t으로 38%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보면 여전히 40.3% 많은 수준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올해 수확한 햅쌀이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 지난해 쌀을 사는 사람이 없어진다”며 “그전에 가능한만큼 재고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재고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쌀값은 폭락 중이다. 지난 5일 20㎏ 정곡 기준 산지 쌀값은 3만4288원으로 1년 전 보다 14.3% 떨어졌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풍년으로 재고가 급증했고 올해도 풍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77만8734㏊로 전년보다 2.6% 감소했지만 생산량은 양호한 작황과 기술력 향상 등으로 전년 수준(432만7000t)을 웃돌 전망이다.

농협은 쌀 시장의 ‘큰 손’이다. 전국 지역농협의 미곡종합처리장(RPC)을 통해 연간 생산량의 35~40% 수준을 매입한다. RPC는 수확한 벼의 건조, 저장, 도정 등의 과정을 일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다. 나머지 쌀 가운데 20~25%는 농협 외 민간 RPC가, 10~15% 정도는 정부가 공공비축용으로 구입한다. 통상 25%는 자가 소비 및 종자용으로 시장에 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농협은 풍년이 계속되면서 RPC 경영악화가 누적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협이 전국에서 운영하는 RPC는 152개인데 쌀 재고 증가로 2014년 304억원, 2015년 339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도 272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해 농협은 ‘사후정산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사전에 수매값을 정해 농가에 지급하고 있는데 이후 쌀값이 떨어지면 수매값 이하로 쌀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RPC의 적자폭이 커질 경우 RPC를 운영하는 지역농협의 경영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국 조합원인 농민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농협 관계자는 “9월께 산지시세의 일정 부분을 우선 농가에 지급하고 생산량이 확정되는 12월 이후 매입가격을 확정해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라며 “쌀의 안정적 매입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충청북도는 지난해 24개 RPC가 73억원 적자를 봤지만 올해 사후정산제를 도입해 가결산 결과 20억원 흑자가 예상된다.

하지만 일부 농민단체들은 사후정산제 도입이 벼 수매가격을 낮추려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사후정산제를 도입하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농민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사후정산제를 도입하기 전 농민과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