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운 우리 새끼?
홀로 사는 어른의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늦깎이 결혼을 바라는 엄마의 눈으로 보면 다 큰 아들은 여전히 ‘내 맘 같지 않은’ 철부지 어린애다. ‘어른 아이’는 TV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자식의 선언에 엄마의 애끓는 탄식이 전국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다.

내가 가는 곳마다 화제의 중심은 단연 결혼이다. 20~30대의 절반 이상이 미혼이다. 어느 자리에 가건 결혼을 안 하는 자녀 때문에 끙끙 앓는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부모 속 썩인 적 없는 아들이 결혼 문제에서만큼은 천하의 문제아가 따로 없다고 하소연한다. 손주의 취업을 걱정할 나이에 자식의 결혼을 걱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밀렵이 두려운 정글의 코끼리가 자연 불임을 선택한 것처럼 도심의 젊은이들은 ‘비혼(非婚)’이라는 사회적 불임을 선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추석이다.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오손도손 정을 나누는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제례도 지낸다. 제사 음식을 다 같이 음복하며 가족끼리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덕담도 나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추석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추석을 코앞에 둔 청년층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도 건네기 힘든 시대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손 치더라도 대화는 필시 취업 걱정, 결혼 걱정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러다가 명절마저 가족의 모진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나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묘하게도 부모 마음은 자식을 이기고 싶어한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다. 제발 자녀가 부모의 뜻을 순순히 따를 것이란 기대는 가슴에 묻어두자. 부모가 모든 걸 선택한 자녀의 삶은 어쩌면 비극적 환멸로 바뀔 수 있다.

그러니 ‘미운 우리 새끼’를 위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모른 척하고 견뎌보자. 자녀의 상황을 전부 다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녀의 마음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바라보자. 단, 인생의 선택에 동반자가 곁에 있다면 더 큰 고마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 보여주자. 진정한 부부애를 일깨워줌으로써 새로운 사랑의 불씨를 지펴주자. 올 추석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와 같은 사랑과 행복이 가정에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박수경 < 듀오정보 대표 ceo@duon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