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주 고객사는 노출 하시면 안 됩니다”

일부 중소기업들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 많게는 70~80%를 차지하는 주 고객사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못하고,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회사의 경영실적을 좌우하는 주 고객사를 비밀로 부쳐야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다. 해당 고객사가 ‘영업 상의 비밀’을 이유로 언급을 자제해달라고 유·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어서입니다.

반도체 제조장비업체 A의 경우 장비 매출의 70% 이상을 국내 S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S사와의 관계에 따라 경영실적이 좌우되는 처지입니다. S사는 글로벌기업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입니다. S사 입장에서는 부품이나 장비 관련 투자금액이 노출되면 경쟁에서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전략이 노출돼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노출을 피하고 싶은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S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A사는 자연스럽게 ‘S사’를 말할 수 없는 비밀로 취급하게 됩니다.

독자적인 브랜드를 개발하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사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자체 브랜드를 준비하거나 내놓으면서 OEM·ODM 방식으로 납품을 해왔던 고객사와 경쟁 관계가 부각되기를 원치 않아서입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원료와 완제품을 납품해왔던 B사는 지난 5월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B사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체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자랑스럽게 알렸던 주요 고객사들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거나 아예 빼야 했습니다. 자체 브랜드 성과가 아직 미미한 상황에서 기존 고객사들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국내외 대기업을 주요 고객사로 보유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을’ 처지인 업체들은 결국 '갑'인 고객사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며 “과거의 성과를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의 기술력 등 우수성을 알리는 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아쉬워 했습니다.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