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의 전 최고경영자 잭 웰치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쓰러져가던 회사를 다시 글로벌 강자로 일으켜 세웠다. 반면 야후는 53건의 M&A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가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확률은 반반이 아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글로벌 M&A 중 70~90%는 혹독한 실패에 이르는 쓸데없는 게임”이라고 말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전선은 M&A 역풍에 사라졌다. 금호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M&A 대전에서 SK와 롯데는 승자로 평가받는다. 이들을 통해 ‘한국형 M&A’의 승리 비결을 살펴봤다.
[성장전략으로 자리 잡은 M&A] M&A 성공한 SK·롯데·한화…오너 결단에 기존사업과 궁합도 맞아
◆오너의 결단과 시너지

하이닉스반도체가 매물로 나온 2011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주변의 반대에 부닥쳤다. 3조원 이상 드는 인수대금도 문제였지만 장치산업인 반도체 사업 특성상 인수 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하이닉스는 2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었다.

최 회장 생각은 달랐다. 투자만 뒤따르면 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양강 체제를 갖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SK는 최 회장의 결단을 따랐다. 3조4000억원을 들여 STX를 누르고 하이닉스를 품에 안았다.

당시 ‘도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최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2011년 이후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정보기술(IT) 업종이 호황을 누리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5%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나눠 가졌다. SK가 인수한 지 1년 만인 2013년 SK하이닉스는 3조원 이상의 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는 2년 연속 영업이익 5조원을 돌파했다.

오너의 결단 못지않게 M&A 성패를 가르는 관건은 시너지다. 인수 주체와 인수 대상의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M&A가 성공하려면 기업이 단기간 내 피인수 기업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지 말고 인수 기업이 보유한 유·무형의 자산을 인수 대상에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롯데는 이런 원칙에 충실한 곳으로 꼽힌다. 롯데는 기존 사업을 키우기 위해 다른 기업을 새 식구로 맞았다. 2009년 롯데면세점과 롯데칠성음료에 각각 인수된 AK면세점과 옛 두산주류가 대표적이다. 작년엔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화학산업을 키우기 위해 삼성SDI 케미칼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한꺼번에 사들였다. 롯데하이마트와 롯데렌탈도 롯데 유통망의 날개를 단 뒤 점유율을 더욱 높였다. 롯데는 이들 기업을 인수한 뒤 투자를 늘리고 마케팅 등을 지원했다.

◆통합 과정이 더 중요

M&A 성공으로 가는 종착역은 화학적 결합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업을 인수해봤자 인수한 뒤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인수하지 않은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종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많은 기업이 인수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M&A 이후 통합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롯데는 이같은 원칙을 따라 M&A 때마다 해당기업의 고용을 보장해 통합을 이끌어냈다. 반면 M&A 성공 방정식을 따르지 않아 실패한 기업도 많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고 주변에서 좋다고 하니 무턱대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봤다. 무리하게 건설사를 인수했다가 그룹이 해체된 웅진그룹과 LIG그룹 등이 단적인 예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잇따라 사들인 뒤 2009년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금호생명과 금호렌터카 같은 그룹의 알짜 계열사를 내다팔았고,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의 핵심 계열사는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에 들어가야 했다.

이 연구위원은 “M&A에 성공할 수 있는 요소를 단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그 결과는 매우 재앙적일 수 있다”며 “M&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과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가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설/도병욱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