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의 주범’이라는 비판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해운업계의 특성을 무시하고 “한진그룹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데도 제대로 반박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직전까지 배에 화물을 싣고 화주와 운송 정보를 넘겨달라는 채권단의 요청을 거부한 게 잘못”이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직전까지 화물을 실었고, 이런 기업의 부도덕은 반드시 지적돼야 한다”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비판에 대해 “해운업계의 특성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12일 반박했다. 선박운송은 최대 한 달 이상 기간 이뤄지기 때문에 법정관리에 대비해 영업을 사전에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류대란 책임지라는 압박에 한진그룹 '속앓이'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유럽까지 운항 시간을 생각하면 법정관리 신청 전 5주 전부터 배를 세웠어야 한다는 얘기”라며 “실현 가능성도 낮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했다면 한진해운의 영업재건은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 9일 전 화주들에게 “자구안 협상이 순조롭게 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도 조기 물류대란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는 게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류대란에 대비해 화주와 운송정보를 넘겨달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한 것도 속사정이 있다는 게 한진해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채권단이 화주 계약 정보를 미리 달라고 요구한 것은 물류대란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현대상선에 미리 주요 화주와의 계약을 넘기기 위해서였다”며 “검토 결과 화주 계약 정보를 경쟁사에 넘기면 배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가 책임을 지라는 정부와 여론의 압박도 한진그룹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시점부터 한진그룹과 한진해운의 직접적 이해관계는 사라진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조양호 회장과 한진그룹이 나서야 한다며 ‘무한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600억원을 출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난관에 빠졌다. 대한항공이 법정관리 기업에 600억원을 지원하면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한항공 이사회는 한진해운이 보유한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먼저 담보로 잡은 뒤 6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은 앞서 한진해운에 1조2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회생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며 “정부가 한진그룹에 책임을 떠넘겨 자신의 책임을 무마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