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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사이드 人터뷰] 대한민국 1호 시계명장 장성원 씨 "47년간 못 고친 시계 없지만 새 시계엔 가슴 설레죠"

입력 2016-09-09 17:30:35 | 수정 2016-09-10 06:24:27 | 지면정보 2016-09-10 A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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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공부해야 하는 수리 기술
17세 때 어깨너머로 배워…97년 '명장'
아직도 스위스 시계장인에게서 배워

'시계의 심장' 국산화 못해 안타까워
'무브먼트' 기술 강국 스위스·일본·독일
추격자 없는 시장, 고급 기술로 격차 벌려

두 아들도 같은 길 걸어
기계식 시계는 명품백처럼 매력 넘쳐
"시계수리공, 도전해 볼만한 직업"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기사 이미지 보기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6일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시계전문점에서 대한민국 시계명장 1호 장성원 씨를 인터뷰하는 도중 한 고객이 급히 찾아왔다. 아버지의 시계를 물에 빠뜨렸단다.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장씨는 시계를 넘겨받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2000만원이 넘는 고급 시계였다. 문자판을 분리하자 그 아래 깨알 만한 부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까지 물이 들어갔는지는 더 안쪽까지 열어봐야 알아요. 녹슨 부품을 아마 갈아야 할 텐데, 일부 부품은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고급 시계답게 견적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고객은 그저 아버지가 아끼는 시계를 고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장씨는 수리하는 데 한 달여가 걸릴 것 같다고 고객에게 말했다. 예상보다 짧은 시간이었는지 고객은 수리기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가 나간 뒤 장씨가 말했다.

“고객이 새로운 시계의 수리를 요청할 때마다 가슴이 설렙니다. 47년째 시계를 고치고 있지만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계를 대합니다. 비슷한 작업은 있을지 몰라도 똑같은 작업은 없죠.”

시계수리공은 평생 공부하는 직업

열일곱 살 때의 인연으로 시계수리공이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삼게 됐다. 아버지 후배의 시곗줄 관련 사업을 돕다 시계에 눈을 떴다. 버려지는 시계를 집으로 가져와 수백번씩 분해하고 조립하며 시계 구조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구해 공부하고 막히는 게 있으면 어깨 너머로 배웠다. 부품을 직접 만드는 수준의 기술은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밥줄’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을 수도 있는 고급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장씨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국가에서 인정받아 1997년 시계수리 부문에서 최초로 ‘명장’에 올랐다. 장씨를 포함해 대한민국 시계수리 명장은 6명이다.

47년간 해온 일이 지겹지는 않을까. 장씨는 시계를 고치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재밌다고 했다. 특히나 쉼 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시계명장이란 칭호가 있는 그도 가끔씩은 섣불리 고칠 수 없는 시계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분해하기에 앞서 속을 썩이고 있는 시계에 대한 공부를 먼저 시작한다. 필요한 정보는 평소 알고 지내는 스위스인 시계 장인으로부터 직접 얻는다.

“고급 시계 대부분이 스위스 시계다 보니 그를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등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분해를 시작합니다.”

장씨와 약 9000㎞ 떨어진 곳에 사는 스위스 장인 사이의 다리는 장남이 놓았다. 장남은 스위스 시계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업체와 스위스 업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브랜드 이름을 묻자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차남은 한국에서 장씨의 일을 돕고 있다. 두 아들 모두 가업을 승계하고 있다.

오랜 세월 고치지 못한 시계가 없다는 것은 장씨가 가진 자부심 중 하나다. 단 안 고친 시계는 간혹 있단다. 수리비용 때문이냐고 묻자 장씨는 “가격 때문에 손님이 수리를 거부한 것은 손님 탓인 만큼 내가 안 고친 것은 아니다”며 웃었다. 어딜 가도 그렇듯 이 바닥에도 ‘진상 손님’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시계명장 1호인 그라 해도 고약한 손님의 시계는 고치기 싫은 법이다.

名品 시계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장씨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들고 오는 시계는 대부분 기계식이다. 기계식 시계란 배터리 없이 태엽의 힘으로 바늘이 움직이는 시계를 말한다.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는 5만원대 전자식 시계에 크게 못 미친다. 기계식 시계 중 정확한 시계의 오차가 하루 5초 내외인 데 비해 전자식 시계는 며칠에 1초 정도 오차가 발생한다.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시계가 멈추기 때문에 자주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런데도 값비싼 명품시계는 대부분 기계식이다. 수백만원부터 시작해 수억원에 이르기도 한다. 명장에게 명품시계가 왜 명품인지에 대해 물었다.

“오늘날 기계식 시계에 쓰인 기술은 모두 150년 전에 완성됐어요. 그런데도 기계식 시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예요. 인공위성에 비견할 만큼 극도로 정밀한 기계라는 얘깁니다.”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는 디지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태엽이 풀리는 힘과 톱니의 조합으로 시곗바늘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움직인다. 스위스, 일본, 독일 등 시계 기술로 이름 높은 극소수 나라만이 고품질의 무브먼트를 제작할 수 있다.

장씨는 국산 시계업계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무브먼트를 만들 자체 기술이 없기 때문으로 평가했다. 장씨가 내놓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 ‘제우스’ 또한 스위스 무브먼트를 수입해 사용했다.

“무브먼트를 만들 수 없는 나라는 결국 고급 시계 시장에 뛰어들 수 없어요. 추격자가 없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고고한 시장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기존 시계 기술자들은 파생기술을 개발하고 소재를 다각화하는 등 150년 전에 완성된 기술을 더 갈고닦아 격차를 계속 벌려 나가죠.”

그는 무브먼트를 쓰지 않는 저가 시계 시장에서도 국내 시계 브랜드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은 국내 업체들이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봤다. 100만원대 이하 패션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은 대부분 중국산으로 품질이 대동소이하다는 것.

“저가 패션시계 시장에서 성패를 가른 것은 결국 브랜드의 힘이었습니다. 시계 이미지에 잘 맞는 국내 패션 브랜드의 부재가 시장을 통째로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기계식 시계는 영원하다

장씨에게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묻자 “내가 시계를 차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주는 묵직한 무게감과 물 흐르는 듯한 초침의 움직임”을 먼저 꼽았다.

다소 관념적일뿐더러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고가의 기계식 시계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재차 물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기계식 시계 메이커들은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는 시계 마니아의 마음을 매혹시킬 무언가를 계속해서 내놔요. 투르비용이나 미닛 리피터 같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시간 이외의 복잡·정교한 기능)’이 그 예죠. 정밀한 기계가 작은 크기에 담겨 손목 위에서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 고급 시계가 여성의 명품 백처럼 과시욕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 또한 빠뜨릴 수 없죠.”

기계식 시계를 써본 적이 없고 전자식 시계와는 다른 특징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소비자도 기계식 시계를 선망하고, 그렇게 새로운 소비자가 늘어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만약 기계식 시계가 편의성 때문에 스마트워치에 밀려야 한다면 벌써 사라졌어야했지만 기계식 시계만이 가진 매력, 전통을 추구하는 소비계층이 있어 독보적인 시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많은 시장이 레드오션인 요즘 시계수리공이라는 직업은 오히려 점점 더 귀해지고 있는 만큼 손재주가 있고, 시계를 좋아한다면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태엽과 톱니만으로 다양한 기능을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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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가치를 정확도로만 평가한다면 기계식 시계의 위치는 궁색해진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전자식 시계만 해도 최소 5배 이상 기계식 시계보다 정확하다. 요즘 누구나 한 개씩은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시계의 정확도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시간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원자시계로부터 인공위성을 통해 현재 시간 정보를 전달받아 오차를 수시로 보정하기 때문이다. 알람이나 달력과 편의성 기능은 덤이다.

디지털 시계에는 매우 간단한 기능이지만 태엽과 톱니만으로 이 같은 기능을 똑같이 구현하라고 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장성원 대한민국 제1호 시계수리 명장은 “디지털 시계가 할 수 있는 기능을 톱니와 태엽만으로 구현한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기계식 시계 기술의 꽃”이라고 평가했다. 3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으로는 투르비용과 미닛 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 등이 꼽힌다.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을 뜻하는 투르비용은 시계 장인 아브라함 루이스 브레게가 1795년께 개발한 기술이다. 고급 시계 기술에서 특히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도 잘 알려졌다. 투르비용 장치는 중력이 주는 오차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시계가 한쪽 방향으로만 중력을 받으면 무게중심이 바뀌어 시각에 오차가 생긴다. 브레게는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품을 회전목마처럼 회전하도록 만들었다.

미닛 리피터는 버튼을 누르면 종이 울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시간을 알 수 있도록 17세기 말 개발돼 이후 개량을 거쳤다. 작은 손목시계 속에 시간에 맞춰 종을 치는 기능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복잡하고 값도 비싸다.

대부분의 기계식 시계는 달력이 31일 기준으로 돌기 때문에 30일로 끝난 달이면 날짜를 보정해줘야 한다. 하지만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이 있는 기계식 시계는 날짜를 일부러 맞출 필요가 없다. 2월이 29일로 끝나는 윤년까지 계산해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장씨는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 매력적인 기능인 것은 맞지만 복잡한 만큼 내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명품 브랜드인 롤렉스는 컴플리케이션 대신 기본기와 내구성에 집중하기로 유명하다. 어떤 시계를 선택할지는 소비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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