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승환과 강정호의 맞대결 동영상. / 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지난 7일 오승환과 강정호의 맞대결 동영상. / 네이버 TV캐스트 화면 캡처
[ 김봉구/박희진 기자 ] 마운드에는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석엔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지난 7일 한국인 메이저리거끼리 맞붙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홈런을 터뜨린 강정호는 시즌 16호포를, 후속 타자를 침착하게 돌려세운 오승환은 16세이브째를 기록했다.

이 장면을 담은 네이버 TV캐스트의 2분21초짜리 영상은 약 67만5000회 재생됐다. 100만번 이상 클릭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의 메이저리그 첫 연타석 홈런 당시 1분26초 분량 해당 영상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 횟수는 무려 260만번을 넘었다.

모두 방송사 콘텐츠를 재가공한 클립 영상(하이라이트를 담은 짧은 영상)이다. 3시간 내외 중계 가운데 콕 집어 원하는 장면만 골라 볼 수 있다. 중계 영상을 잘게 쪼갰을 뿐인데 ‘핫’한 수입원이 됐다. “코리안 메이저리거 홈런 한 방에 1억원씩”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간편한 이용을 원하는 소비자 요구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도 1~3분 길이 영상으로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대 후반 회사원 박승현씨(가명)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좋아하는 예능을 본다. 한 회 60~80분 분량은 부담스러워 포털에 올라와 있는 재미있는 클립 영상 위주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네이버 TV캐스트, 다음 TV팟, 카카오 TV 등에 방송사 콘텐츠의 클립 영상을 공급하는 곳은 스마트미디어렙(SMR)이라는 온라인 광고대행사다. 온라인에서 소비하기 쉬운 형태로 만든 짧은 영상에 15초짜리 광고를 붙여 제공한다. 지분을 투자한 지상파 3사와 CJ E&M, 종합편성채널(종편)이 SMR에 참여하고 있다.

SMR은 지난해 약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아니지만 기존 콘텐츠를 쪼개 편집하는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는 “SMR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한 것으로 안다. 실제로 SMR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사람들이 고속 승진했다”고 귀띔했다.

“창의성이란 단지 연결하는 것”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언급에 빗대어 풀이하면, 반대로 기존 제품이나 콘텐츠를 쪼개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뿐 아니라 기존에 있는 콘텐츠를 다른 방식으로 재가공해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면서 “클립 영상은 이용자 니즈를 잘 파악해 발전한 방송기술을 활용한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이 먹혀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주요 업체들이 연간 100~300%대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카셰어링 시장.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요 업체들이 연간 100~300%대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카셰어링 시장.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카셰어링은 소비시간을 쪼개 성공한 또 다른 사례라 할 수 있다. 보통 하루 단위로 빌려 쓰는 렌터카가 커버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잠깐 차를 사용하고 싶은 이들의 니즈가 크다는 점에 착안했다.

작년 450여억원의 매출을 거둔 카셰어링 업체 쏘카는 차량을 10분 단위로 끊어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 강점이다. 쏘카 관계자는 “기본 30분 사용에 10분씩 나눠 요금을 매겨 기존 렌터카 업체와 차별화했다. 지금은 확보 차량 6700여대, 회원 수는 200만명을 넘어섰다”고 소개했다.

대용량 제품을 쪼개 쓰는 1차원적 소분(小分) 소비를 넘어선 점에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대량 소비와 소유의 종말’로 풀이했다. 소비의 성격 자체가 변한다는 얘기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1인가구 수와 가계부채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두 현상의 공통점은 소비자의 실질 경제력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소비자 눈높이는 높아진 상태여서, 목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준수한 품질의 소비를 원하는 수요가 크다”고 진단했다.

기존에 생각하기 어려웠던 쪼개 소비하는 방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박 교수는 “가능한 쪼개 소비하다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은 리스나 렌탈 형태로 가게 될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소비 행태”라며 “한 마디로 ‘대량 소비를 하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유에서 소비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2014년 출간된 《소비의 미래》 저자 이승일씨는 “상품의 변화 주기가 짧아지면서 굳이 구입해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소비자) 판단”을 근거로 “업체가 판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직접 임대·관리 패키지를 제공하는 제조업의 ‘3차 산업화’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봉구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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