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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포로 석방 '강수'로 한미 방위조약 이끌어내, 6·25 남침으로 피해 막대…공산주의 실상 공부

입력 2016-09-09 16:29:40 | 수정 2016-09-09 16:29:40 | 지면정보 2016-09-12 S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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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33)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는 판문점 군사회담장. 1953년 7월27일 이곳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됐다.기사 이미지 보기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는 판문점 군사회담장. 1953년 7월27일 이곳에서 정전 협정이 조인됐다.

미국 태평양방어선 밖의 한국

반공 포로 석방으로 대한민국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성과는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당시 미 국방부가 정한 태평양 방위선은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선이었습니다. 6·25라는 엄청난 전쟁을 치렀지만 미국은 한국을 여전히 태평양 방위선 밖에 뒀던 거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안보나 재건에 대한 보장 없이 떠나는 것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미국은 선뜻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공산군이 한·미 상호 방위 조약 맺은 것을 이유로 휴전 회담을 깨뜨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미국의 확실한 약속이 필요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진 것입니다.

당황한 미국은 1953년 6월25일, 대통령 특사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평화적 수단으로 한국을 통일하는 데 계속 노력한다. 전쟁이 끝난 뒤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맺는다. 미국 정부가 허용하는 한 장기적인 경제 원조를 제공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유엔군의 정전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전 협정에 서명하는 자리에 우리 국군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유엔의 결정에 따르는 거지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전에 합의한 건 아님을 밝힌 것이죠.

화천군에 있는 인민군 사령부 막사. 화천의 일부 지역은 6·25전쟁 이전에 38선 이북이었다.기사 이미지 보기

화천군에 있는 인민군 사령부 막사. 화천의 일부 지역은 6·25전쟁 이전에 38선 이북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 조인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 조인이 이뤄졌습니다. 휴전 회담이 시작된 지 2년 만이었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 회담이었죠. 조인으로부터 12시간 후 이 협정이 발효된 밤 10시에 모든 전선에서 대포 소리가 멎었습니다. 전쟁이 중지된 것입니다.

‘종전(終戰)’이 선언된 것이 아니라 ‘정전(停戰)’ 협정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전투는 중지됐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의 침략을 막았기 때문에 북한이 승리한 전쟁”이라며 “세계 최강 미국에 역사상 첫 패배를 안겨준 전쟁”이라고 떠벌렸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점령하려다 실패했으니 분명히 패배한 것입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쳐들어온 적군을 물리쳐 나라를 지켰으니 승리한 것이죠. 또 유엔군 입장에서도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산주의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의 피해는 너무도 컸습니다. 국군과 유엔군 119만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고 부상했습니다. 북한군과 중국군의 피해는 더욱 컸죠.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남북한의 인명 피해 규모는 500만명이 넘었습니다. 전쟁 통에 가족과 헤어진 이산가족 수는 1000만명에 이르러 민족 전체의 큰 비극이 됐습니다. 거리에는 가족을 잃은 고아와 과부, 팔다리 잃은 군인,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살 곳을 잃은 이재민이 넘쳐났습니다.

물적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거의 전국이 다 전쟁터였기 때문에 건물은 물론 도로, 철도, 항만과 산업 시설도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죠. 무엇보다 커다란 피해는 같은 민족끼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적대 관계가 돼버렸다는 점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소중함 깨달아

물론 6·25전쟁의 결과 남한 사람도 북한 공산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남한을 점령하고 있는 동안 토지 개혁을 했습니다. 자작농의 토지까지 강제로 빼앗아 빈농에게 나눠주고는 30%에 가까운 작물을 세금으로 거둬갔습니다. 곡식알까지 헤아려 세금을 거둬가는, 일제강점기에도 없던 지독한 수탈을 했죠. 또 18~36세 남자를 강제로 끌고 가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에서 희생당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점령지에서 지주나 공무원, 군인이나 경찰 등을 인민재판하고 그 가족까지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이런 공산 체제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남북한의 주민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그렇게 큰 전쟁을 치렀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입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경계선이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동쪽 휴전선은 38선 위로 올라가고, 서쪽 휴전선은 38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전쟁 전에 남한이었던 개성은 북한이 됐고 북한에 있던 설악산은 남한 땅이 됐습니다.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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