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다가오는 미래에 준비돼 있는가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그날이 그날 같지만 우리 삶과 미래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 기저에서 도도히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생산방식의 변화가 그렇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승부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빅데이터와 딥러닝으로 단련된 컴퓨터의 판단은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사고능력을 따라잡고 있다. 섬세함을 자랑하는 사람의 감(感)과 촉(觸)도 머지않아 방대한 정보와 기계의 무심한 알고리즘을 당해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기술혁신이 삶을 윤택하게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파괴적인 힘은 직업과 일의 형태, 노동시장, 나아가 소득 창출과 분배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다. 10~20년 내에 일자리의 반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술적 대량실업 주장은 과장됐다고 해도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안정해지고 양극화될 것이다. 변화의 흐름에 인간적으로 저항할 수 있겠지만 시장 선택을 받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이런 기저의 흐름은 경제 주체에 변신과 적응을 엄중히 요구한다. 그동안 열심히 해서 1인당 소득 3만달러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변화의 등에 올라타서 잘해야 한다. 잘못된 관행과 권위에 젖은 회사 문화를 희화화한 ‘무한상사’는 스크린 속 패러디로 끝나야 한다. 지금의 후진적 근로관행, 전투적 노조, 양극화된 노동시장, 미흡한 고용안전망으로는 다가오는 일의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 교육시스템과 고용법제, 사회안전망을 짚어보고 정비해야 한다. 특히 장기 실업 청년, 임시직 경제(gig economy) 하의 근로자들이 보호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경제의 주변인으로 전락하는 것을막아야 한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개방과 경영 혁신은 이미 기업과 산업 판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되지 못한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동네 자영업자로 전직한 근로자들은 과당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자리매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혁신 친화적 환경, 유연한 경제시스템, 합리적인 보상체계가 전제돼야 하는데 우리는 과연 준비가 돼 있는가.

변화에 적응이 느린 것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반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임금과 직결되는 노동생산성은 세계적으로 2008년 글로벌 위기 전부터 크게 둔화됐고 분배도 추세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기술진보가 숙련편향적으로 되고 조세와 지출을 통한 재분배 기능이 약화되고 있어 30년 전 하위 10%의 7배쯤 되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상위 10% 소득은 이제 10배에 이르고 있을 정도다.

세계 각국은 생산성과 포용성을 함께 높이는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데 인적 역량을 높이고, 진입장벽을 허물어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고, 경쟁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쌓자는 것이 해법의 공통분모다. 교육·노동·금융·공공 등 우리의 4대 부문 구조개혁은 경제혁신을 위한 출발점이자 국제 흐름과 부합하지만 아직 미완이다. 상황은 엄중한데 현실의 벽은 높다.

경기 부진과 구조조정, 노동시장 이중구조, 저출산·고령화 등 국내 문제가 산더미이고 당장 내 코가 석 자라서 기저적 변화의 심각성이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미래를 결정지을 변화의 흐름을 만만히 대해서는 안 된다. 일상에 파묻혀 기저의 흐름을 무시하거나 눈앞의 문제 때문에 지지고 볶기만 하면 현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까지 변화의 충격을 오롯이 몸으로 받게 된다. 차근히, 그리고 함께 준비해야 한다. 할 일은 많고 마음은 급한데 해는 벌써 산 중턱에 걸렸다.

윤종원 < 주OECD 대사 jwyoon15@mof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