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래보레이터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는 한스 린트너 바이엘 글로벌 대외협력혁신 총괄. 바이엘 제공
코래보레이터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는 한스 린트너 바이엘 글로벌 대외협력혁신 총괄. 바이엘 제공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상대로 ‘임대업’을 한다. 2014년 5월부터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을 베를린에 있는 제약부문 본사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바이엘 연구센터에 입주시켜 매달 2000유로(약 246만원, 베를린 기준)를 받고 있다. 프로그램 이름은 ‘코래보레이터(CoLaborator)’다. 매출 463억유로(약 57조원), 순이익 41억유로(약 5조원)짜리 회사가 왜 이런 사업을 하는 것일까.

독일 바이엘의 코래보레이터 건물에 입주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캘리코의 미하엘 드로쉬 운영 실장이 연구개발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현미경을 조작하고 있다. 베를린=이상은 기자
독일 바이엘의 코래보레이터 건물에 입주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캘리코의 미하엘 드로쉬 운영 실장이 연구개발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현미경을 조작하고 있다. 베를린=이상은 기자
속내는 따로 있다. 주변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스타트업을 입주시켜 바이엘 연구개발(R&D) 조직에 혁신 문화를 ‘수혈’하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베를린에서 만난 한스 린트너 바이엘 제약부문 글로벌 대외혁신·협력 총괄은 “바이엘 같은 회사는 혁신 능력을 잃으면 끝장”이라며 “스타트업을 입주시켜 자연스럽게 교류하면 이들의 혁신적인 분위기가 조직 내에 전파될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바이엘은 2009년부터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바이엘의 화합물을 이용하는 연구진에 보조금을 주는 프로그램(그랜츠포인디케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코래보레이터는 이보다 한 발 더 들어간 벤처 양성 모델이다. 입주한 스타트업은 바이엘에 성과를 보고할 의무가 없고, 기업공개(IPO) 때 바이엘에 투자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식의 ‘족쇄’를 달 일도 없다. 건물주(바이엘)에게 임차료만 내면 된다. 바이엘도 이들을 ‘세입자’라고 부른다.

코래보레이터 건물은 독립적인 단층 사무공간이다. 3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 기본이다. 공용 실험실을 비롯해 냉동·냉장 및 살균시설, 회의실 등을 갖췄다. 바이엘의 각종 장비와 실험실, 전문가 네트워크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대기업의 특허 가로채기’ 같은 논란을 막기 위해 아예 전화선과 인터넷선은 바이엘 네트워크가 아니라 외부 업체 것을 쓴다. 린트너 총괄은 “바이엘도 지식재산권(IP)에 기반을 둔 회사이기 때문에 입주기업의 IP를 지켜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코래보레이터 베를린 센터 모습. 바이엘 제공
코래보레이터 베를린 센터 모습. 바이엘 제공
항원·항체에 색깔을 입히는 바이오마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인 캘리코의 미하엘 드로쉬 운영실장은 “코래보레이터에 들어온 뒤 우편물을 받는다든가, 냉장시설을 확보한다든가, 도둑이 들지 않을지 걱정한다든가 따위의 사소한 걱정거리에서 해방됐다”고 말했다.

린트너 총괄은 “바이엘의 샘플을 입주 스타트업에서 가져다 쓰기도 하는 등 호혜적인 관계”라고 했다. 굳이 월 2000유로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공짜로 뭔가를 나눠주는 관계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입주 스타트업 가운데는 유망 기업이 꽤 많다. 이들이 언제든 바이엘 경쟁사 등에 회사를 넘긴다 해도 바이엘로선 이를 막을 권한이 없다. 요르크 크네블라인 바이엘 기술 스카우트 담당자는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며 “경쟁사에 간다면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린트너 총괄은 “불과 5년 전에는 코래보레이터라든가 크라우드 소싱 같은 협업 모델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뭘 하겠다고 예측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일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모델을 계속 추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