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베니건스(1995년) 마르쉐(1996년)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1997년) 등 국내 1세대 패밀리레스토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서울 번화가의 목 좋은 곳마다 주황색 간판의 스테이크집이 있었다.

이 체인 레스토랑의 이름은 ‘스카이락(Skylark·종달새)’이었다. 스테이크와 스파게티를 팔았다. 주말이 되면 외식 나온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994년 CJ제일제당 외식사업부가 일본 외식기업 스카이락과 기술제휴를 맺고 들여온 레스토랑이었다. 국민 소득이 늘어나고 외식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와 연계해 육가공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스카이락은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빕스, 뚜레쥬르 등의 외식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CJ푸드빌의 시작이었다.

CJ푸드빌은 빕스와 뚜레쥬르를 비롯해 비비고(한식) 차이나팩토리(중식) 제일제면소(면) 계절밥상(한식뷔페) 더플레이스(이탈리아식) 다담(모던한식) 우오(일식) 몽중헌(딤섬) 등의 외식사업과 투썸플레이스(디저트카페) 투썸커피(커피) 같은 프랜차이즈사업을 한다. CJ푸드월드와 N서울타워, 엔그릴, 한쿡, 더베스트버거인서울, 더플레이스다이닝, 엔테라스처럼 외식과 관광 등을 함께할 수 있는 복합화사업도 한다. 전국 매장 수 2200여개, 10개가 넘는 자체 개발 브랜드, 작년 기준 매출 1조3280억원으로 외식전문기업으로는 단연 1등이다.

생활 밀착형 기업

‘고급 문화의 대중화’는 CJ푸드빌이 22년간 국내 외식업계에서 해 온 작업이다. 스테이크전문점인 빕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보던 정통 스테이크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친숙하게 만들었다. 1997년 처음 선보일 당시 ‘샐러드바’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연어, 새우 같은 일반 레스토랑에서는 보기 어려운 식재료로 만든 메뉴를 선보이며 2010년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들을 제치고 매출 기준 1위 자리에 오른 뒤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빕스가 내놓는 메뉴마다 ‘웰빙’이라는 개념을 선보이면서 당시 국내 외식업계에 웰빙 바람이 불기도 했다. 동네 곳곳에 있는 빵집 뚜레쥬르는 1997년 1호점을 열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프랜차이즈 빵집의 대다수는 공장에서 빵을 대량 생산해 판매만 했다. 뚜레쥬르는 매일 매장에서 빵을 직접 굽는다는 점을 내세워 기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시장을 뒤흔들었다. 투썸플레이스도 유럽 등 식문화 선진국에서만 즐길 수 있던 고급 디저트를 대중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종에 대한 집착

CJ푸드빌의 10여개 브랜드의 공통점은 모두 ‘토종’이라는 것이다. 외국에서 수입한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 모두 자체 개발이다.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브랜드만으로 외식업을 하는 기업은 CJ푸드빌이 유일하다. 정문목 CJ푸드빌 대표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면 보다 쉽게 사업을 할 수 있지만 수많은 담금질을 거쳐 자체 개발한 토종 브랜드로 승부하겠다는 것이 CJ푸드빌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CJ푸드빌의 토종에 대한 집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브랜드는 계절밥상이다. 한국 땅에서 기른 제철 식재료로 한식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로 2013년 문을 열었다. 작년 계절밥상이 쓴 국내 농산물만 1700t에 달한다.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외국산 밀 대신 앉은뱅이밀 같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국내 희귀종으로 메뉴를 만든다. 농민들이 가꾼 농산물을 매장에서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계절밥상은 농가 수십 곳과 계약을 맺고 농산물을 전량 구매해 식자재로 사용한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어느 기업보다 납품하는 곳과 밀착된 회사가 CJ푸드빌”이라며 “상생이 없으면 고객 만족도 없다”고 말했다. 계절밥상은 브랜드 출범 3년 만에 매장 수가 40개를 넘어섰다.

‘음식’이 아닌 ‘음식 문화’ 전파

이탈리아 유력지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작년 5~10월 ‘음식’을 주제로 열린 ‘2015 밀라노엑스포’ 관련 기사에서 “엑스포에 참석한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배추 발효음식인 김치를 먹기 위해 30분간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며 엑스포에 참가한 한국의 한 레스토랑을 소개했다. 이 레스토랑이 CJ푸드빌의 비비고다. 밀라노엑스포가 열린 6개월간 20만명의 외국인이 다녀갔다. 엑스포 공식 사이트에선 ‘엑스포 기간 절대 놓쳐선 안 될 10가지 음식’ 중 비비고의 김치찌개를 3위에 올려놨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별다른 홍보 활동이 없었는데 외국인 방문객들이 30~40분씩 줄을 섰다”며 “비비고에 오면 음식이 아닌 한국의 식(食)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비비고를 통해 한식을 알리고 국가 브랜드 제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CJ푸드빌은 지난 5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CJ푸드빌은 한국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비전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비비고로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면 이를 경험한 소비자들이 가정에서도 한식을 즐기기 위해 CJ제일제당 식품을 구매하는 식으로 대내외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는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외식 매장을 기반으로 CJ그룹의 비전인 외식(外食)과 내식(內食)을 통합한 한국 식문화 세계화를 앞당기는 데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