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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칼럼] 브라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들

입력 2016-09-07 17:55:47 | 수정 2016-09-07 22:26:46 | 지면정보 2016-09-08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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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프 스캔들' 일으킨 브라질 문제의 본질은
지대 과점한 정치인들의 위선

전체 가구의 35%가 월 소득 20만원에도 못 미치는 가난의 대물림

납치·강도가 '생계형 범죄'
본질 눈 감은 포퓰리즘 정치 '닭 날갯짓하는 경제' 자조만"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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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국 기업의 상파울루 주재원이 퇴근길에 납치당했다. 서울의 부모가 아들 가족을 보러 지구 반바퀴를 돌아 찾아온 날이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지만 곧 수습됐다.

전화를 걸어온 납치범들이 한국 돈으로 몇 백만원 정도의 몸값을 요구했고, 흥정 끝에 ‘가격’을 낮춰주기까지 했다. 전형적인 ‘생계형 납치’였다. “도시 빈민들이 호구(糊口)를 위해 개발한 생업(生業)”이라며 씁쓸해하던 기업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브라질의 대형 백화점들은 옥상에 헬리콥터를 상시 대기시켜 놓고 있다. 상류층 ‘큰손’ 고객들이 신변을 걱정하지 않고 쇼핑할 수 있도록 ‘헬리셔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상파울루 북서부의 아브론 데 모라이스가(街)는 ‘도난품의 거리’로 불린다. 길 양쪽에 핸들, 문짝, 좌석 등 온갖 자동차 부품을 파는 상점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이 훔친 자동차에서 뜯어낸 것들이다.

상파울루 최대 번화가인 파울리스타 거리의 상공회의소, 은행, 연구소, 기업들을 방문하면서도 낯선 경험을 했다. 1층 프런트데스크에 들러 신분증(여권)을 제시한 뒤 방문 대상자와 통화해서 확인을 받고, 즉석사진 촬영과 함께 1회용 신분증(photo ID)을 발급받아야 했다. 어느 빌딩도 예외 없이 이런 복잡한 보안절차를 밟았다.

허술한 치안은 민간 보안산업을 발전시켰다. “브라질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보안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5%가 보안산업에서 발생한다.

만연(蔓延)한 치안 불안은 브라질 저소득층의 생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반증한다.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운 빈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강도질에 나서는 걸 무슨 수로 막겠는가.” 상파울루 경영대학원인 FGV스쿨의 호제리우 모리 교수가 뱉어내던 탄식이 생생하다.

지난주 외신을 달군 ‘브라질 14년 좌파정권의 몰락’ 뉴스를 접하고 펼쳐든, 옛 취재수첩에 적힌 내용들은 이렇게 씁쓸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2년 전 연임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재임기간 중의 재정적자를 감추기 위해 분식처리한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호세프가 재정회계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재정적자를 감추려고 한 것은 빈곤층 지원에 뿌려댄 돈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브라질의 빈부격차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인구 2억명이 넘는 나라에서 월평균 소득이 한국 돈으로 20만원에 못 미치는 가구가 전체의 35%에 이른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확실한 방법은 일자리 창출이다. 산업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로와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정비하고, 고용 효과가 큰 산업을 발굴해 육성해야 한다. 취업 능력을 길러줄 교육 인프라도 중요하다.

역대 브라질 정부는 이런 ‘정공법’을 외면했다. 한반도 면적의 43배가 넘는 넓은 국토(851만4877㎢)에 무진장 묻힌 광물자원과 곡물, 심해유전에 안주했다. 천연자원의 축복을 과점(寡占)한 소수 기득권층에 대대적인 경제개발은 ‘성가신 일’일 뿐이다. 마침 삼바 축제와 축구 따위의, 빈곤층이 욕망을 분출하고 신분을 상승(유명 스포츠 스타가 됨으로써)시킬 수 있는 출구가 있는데 말이다.

빈곤층을 적당한 퍼주기로 달래는 게 중요한 ‘정치 기술’이 됐다. 그 기술로 재미를 본 사람이 호세프의 전임자인 룰라 전 대통령이다.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저소득층 직접 생계지원)’로 대중의 환심을 사면서 뒤로는 몇몇 기업인에게 이권을 몰아주고 거액의 뒷돈을 챙겼다.

‘보오 데 갈리냐(Voo de Galinha).’ 브라질 취재수첩을 뒤적거리다가 눈에 띈 단어다. 포르투갈 말로 ‘닭의 날갯짓’이란 뜻이다. 닭은 아무리 날개를 퍼덕거려도 날아오르지 못한다. 브라질 지식인들이 자기네 나라 경제를 빗대어 표현하는 말이란다. 이 나라에만 해당하는 말일까. 본질에 눈감은 포퓰리즘 정치의 귀결(歸結)을 경고하는 말로 가슴을 때린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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