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백두산에 올라
지난 주말 한국감정원 청년이사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다. 저 아름다운 산천에는 경계가 없는데 멀리 지린성까지 돌아 중국 땅인 백두산 북파(北坡)에서 우리 민족의 성지인 천지를 바라보자니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깝다. 신라는 어찌하여 삼국통일에 급급해 당나라 눈치를 보며 압록강 이북 드넓은 북방영토를 포기하고 우리를 한반도에 가뒀는가. 김부식은 어찌하여 정권 안위에 급급해 금나라 눈치를 보며 우리의 강역을 압록강 이남으로 한정하는 역사서를 써서 만리장성 동쪽 우리 영토를 영원히 포기하도록 종용했는가. 청나라 강희제가 백두산 주변 영토 확장의 야욕을 펼치는 동안 이에 맞서 경계를 지켜낸 조선의 왕은 있었는가. 백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살던 땅에 남아 영토와 주권을 지키려 했는데, 우리 역사의 위정자들은 정권과 기득권을 지키려 영토와 백성까지 포기한 일을 생각하며 착잡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짙푸른 천지를 바라봤다.

산 아래 만주 이곳저곳에는 민족자주권 수호 의지가 박약한 후손들을 나무라듯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왕실과 대신들이 내준 주권을 회복코자 만주까지 와서 국권 회복에 온몸을 바친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속 울컥하는 감동과 아울러 한편으로는 오늘도 나 살기에 바쁜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럽기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05년 일제가 국권 이양을 요구해왔을 때 심약한 고종은 “신하들이 알아서 하라”고 뒤로 물러났다. 이완용 등 소위 을사오적은 자신들의 지위 보장과 황실의 안녕을 약속받고 외교권을 넘겨줬다. 이후 수많은 복구 기회가 있었지만 일제의 은전에 취한 대신들은 조선을 한일합방이라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뒤늦게 국권 상실을 알아차린 왕실이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위정자들이 헌신짝처럼 버린 국권을 되찾아온 이들은 결국 만주로 연해주로 떠돌던 당대의 비주류와 민초들이 아닌가.

사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연일 핵미사일 개발 능력을 과시하며 위협하는 북한을 머리 위에 두고도 주변국과 경제 상황을 이유로 방어무기인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모습과 일제의 야욕을 알면서도 황실의 안위를 이유로 외교권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던 대신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이러다 한라산까지 반으로 쪼개주고 남의 나라로 경계 지은 땅을 밟으며 선조들이 지켜온 우리 땅을 아쉬워할 후손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지나친 상상일까. 백두산에 올라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사드 문제도 우리의 영토와 주권 수호 및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먼저 민초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독립투사들의 준엄한 일갈을 듣는다.

서종대 < 한국감정원장 jjds60@ka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