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29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내달 29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도리안 니가 나라면/도리안 내가 너라면/너의 시간을 내게 줘/나의 심장을 너에게 줄게.”

19 세기를 대표하는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 소설이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만났다. 김준수 박은태 등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에 인물들의 심리를 추상적 몸짓으로 표현한 안무, 변화하는 감정을 표현한 영상 등 참신한 무대 연출까지 더해졌다. 지난 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사람으로 치면 팔방미인에 가까웠다. 뮤지컬을 이루는 각 요소만 떼어놓고 보면 뛰어나지만 공연을 보고 난 뒤 여운은 그다지 남지 않았다. 인물의 심리 변화 등 드라마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져 감동이 반감되는 탓이다.

작품은 영국 귀족 청년 도리안 그레이(김준수)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향한 탐욕 때문에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바꾸는 이야기를 그린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가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도리안이 싸우는 대상은 악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영원한 젊음과 완벽한 쾌락을 추구하라고 속삭이는 헨리 와튼(박은태)과 “젊음은 찰나이기에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도덕주의자 배질 홀워드(최재웅) 사이에서 도리안은 쾌락주의자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도리안이 왜 배질이 아니라 헨리의 사상에 경도되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도리안은 연인인 여배우 시빌 베인이 허접스러운 연기로 비난받자 “당신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며 떠나버린다. 충격에 빠진 시빌이 자살하고 난 뒤 도리안은 아름다움과 금지된 욕망에 집착한다. 이런 도리안의 고뇌와 변화가 극적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감정의 기승전결이 깊이 있게 드러나지 않아서다. 김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은 타락해가는 도리안과 잘 어울렸으나 그 안에서 복합적인 감정과 고뇌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주인공들은 지나치게 설명하는 듯한 대사 대신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대사로 대화를 이어간다. 현학적인 대사가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몰입이 어려웠다. 잦은 장면 전환도 극의 흐름을 끊어 놓았다.

인물의 감정을 무용으로 표현하거나, 변화하는 초상화를 영상으로 표현한 부분은 새로운 시도로 꼽힌다. 하지만 반투명 가림막에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영상을 쏘는 기법은 오히려 극의 중심이 돼야 할 배우를 가려버리는 역효과를 냈다. 시빌의 동생과 도리안이 마주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처리하면서 관객이 상상할 영역은 사라졌다. 다음달 29일까지, 5만~14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