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내수를 강력히 억제하자는 법
주요 20개국(G20) 회담에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기고문을 통해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이 점점 굳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강력한 정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저성장의 덫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정치적 균형추가 경제 개방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위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세계가 저성장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수요진작, 구조개혁, 교역 활성화와 함께 성장과실 공유 정책을 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논의는 한국 경제에도 정확하게 해당된다.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와 다르게 움직이는 디커플링(decoupling)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제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커플링(coupling) 현상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저성장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생산가능인구가 올해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8일에 발효되는 소위 ‘김영란법’은 내용과 시점 면에서 모두 한국 경제에 상당한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많은 모임에서 이 법은 상당한 화제가 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모임에서 이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법 위반 여부에 대해 명쾌하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의원이 “이거 우리가 통과시킨 법 아니냐”고 해서 모두들 웃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입법 주체인 국회의원들도 법 위반 여부에 대해 결론을 못낼 정도인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주체들은 답답해할 만도 하다.

한국 경제는 자영업자 비중이 엄청나고 특히 음식료산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우리 문화 속에 일반화된 회식 문화에 연유한 면이 크다. 같은 직장 동료들 혹은 친지들끼리 일과 후에 삼삼오오 모여 회식을 하는 문화가 상당 부분 일반화돼 있다 보니 식당이 많아지는 것이다. 한 외국인에게 이런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하니까 “하루종일 같이 일하고 나서 왜 저녁 때 또 만나 식사를 하느냐”고 반문을 하더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회식은 뿌리 깊은 전통 중 하나다.

그런데 소위 김영란법은 이런 회식 자체를 상당 부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일정 액수(3만원) 이하이면 한 사람이 결제해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찜찜한 구석이 상당하다 보니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공무원 교사 교수 언론인 등이 속한 모임은 모임 자체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저렴한 식당으로 수요가 이전되는 효과도 일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회식과 회동 자체가 줄어들면서 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다. 골프장은 이 법 발효 시점 이후 예약 자체가 엄청나게 줄었다는 뉴스가 전해질 정도이고 일부 골프장과 음식점에서는 벌써 직원해고가 이뤄진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법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는 자영업, 농수축산업, 레저산업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내수산업이다. IMF 총재가 ‘강력한 내수진작정책’ 실행을 권고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강력한 내수감축정책’을 시행하는 셈이다. 성장률 3%를 밑돌면서 비실거리는 한국 경제를 보면 법 시행 시점이 너무 안 좋다. 더구나 식당 등 자영업과 농수축산업은 취약산업이다. 회식과 회동의 전반적 축소로 인해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는 업소 주인이나 해고되는 직원 대부분 경제적 약자가 많을 것인데 이는 소득분배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더구나 법 시행 후 경제 부진이 이어지면 이에 대한 취약계층의 불만은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현 정부를 향할 수도 있고, 정부 인기도는 더욱 하락할 수 있다.

발효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지만 내수의 급격한 감소 가능성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응계획)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미리 잘 준비를 하고 능숙하게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 / 공적자금관리委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