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 해운산업] 하역비용만 최소 1700억원 들고 선박 억류 푸는데 한달 이상 걸려
한진그룹이 세계 해상에서 발이 묶인 한진해운 선박과 선원을 구하기 위해 1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물류대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긴급 하역비 투입으로 구할 수 있는 선박이 제한돼 있는 데다 각국 법원의 압류금지명령이 나오기까지는 한 달가량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으로부터 용선료(선박 임대료), 장비비, 유류비 등을 받지 못한 채권자들이 하역비만 지급한 데 불만을 품고 추가로 자산 압류 등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6일까지 미국·일본·영국 법원에 한국의 법정관리와 같은 효력을 지니는 압류금지명령(stay order)을 신청했다. 오는 9일까지 중국 대만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법원에도 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한진그룹은 이날 하역비 1000억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법원이 추산한 최소한의 하역비용(1700억원)에 못 미친다. 상당수 선박은 각국 법원의 압류금지명령 허가를 받아야 하역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각국 법원이 압류금지명령을 내리면 채권자라 하더라도 선박에 대해 억류나 입·출항을 거부할 법적 권한이 사라진다.

한진해운이 긴급 하역비를 투입해 일부 선박을 미국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 압류 위험이 없는 항만에 대고 하역을 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화주들은 최종 목적지까지 화물을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공산이 크다.

한진해운의 이번 조치가 채권자들에게 ‘떼를 쓰면 돈을 받는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의 거래처는 보통 돈을 다 떼인다”며 “한진그룹이 이번에 하역료를 내면 다른 채권자들도 억지를 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미지급금은 용선료, 하역운반비, 장비 임차료, 유류비 등 6100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 채권자들은 미지급금의 해결을 요구하며 선박의 하역 등을 막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