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부산 신항 한진해운부두에 접안한 선박이 없어 썰렁한 모습.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한진해운 선박 입출항과 컨테이너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부산 신항 한진해운부두에 접안한 선박이 없어 썰렁한 모습.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한진해운 선박 입출항과 컨테이너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물류 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한진해운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플랜B’도 생각하지 않고 국내 1위, 세계 7위 한진해운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내몬 것은 잘못이지만 한진해운 역시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에 빠져 법정관리 이후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법정관리 전 한진해운이 화주와 운항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물류 대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고 한진해운을 비판했다.

◆막판에 허둥지둥

[기로에 선 한국 해운사업] 한진해운 '대마불사' 믿고…압류금지 준비도 안해 물류대란 키웠다
한진해운 내부에선 법정관리 직전까지 “설마 법정관리까지 가겠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국가 기간산업체인 한진해운이 무너지면 수출입 업체가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정부와 채권단이 어떤 식으로든 회사를 살려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달 31일 법정관리 신청 때도 이어졌다. 당시 한진해운은 법무법인 넥서스를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 신청서를 냈다. 법조계에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았다. 넥서스가 국내외 법정관리 신청에 별다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넥서스는 해외 법원에 ‘압류금지 신청(stay order)’을 내본 경험이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당초 김앤장에 자문했지만 김앤장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채권자들로부터 일감을 따기 위해 한진해운에 대한 자문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에 성공한 STX, 웅진, 동양 등 대기업들이 법정관리 신청 한 달 전부터 법률 자문사를 선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진해운의 상황을 보다 못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직접 나서 해외 압류금지 신청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을 소개해줬을 정도다. 덕분에 한진해운은 한국 시간으로 지난 3일에야 가까스로 미국 법원에 압류 금지 신청서를 낼 수 있었다.

◆‘대마불사’ 믿고 버티기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채권단과 4개월간의 협상 과정에서 보인 한진해운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산업은행은 ‘채권단 자율협약’ 개시 한 달 뒤인 6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한진해운 대주주 측에 “부족 자금 1조원을 출자하라”고 요구했다. 시장에선 이때 처음 법정관리 가능성이 언급됐다. 당시 한진해운이 밀린 용선료, 항만이용료 만 4000억원이 넘었다. 법정관리 전문가는 “사실상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개시한 시점인 5월부터 재무적으로는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할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2011년 대한해운과 2013년 STX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에는 법정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운영자금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선박 억류나 입출항 거부에 따른 물류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이런 자금이 전혀 없었다.

8월 한진그룹과 채권단 간 협상이 답보 상태를 지속하자 산업은행은 법정관리 후속 대책을 마련하자고 한진해운에 제안했다. 당시 한진해운의 상거래채권 미지급액은 7000억원에 육박했다. 부족 자금은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대로는 회생이 어렵다고 보고 법정관리에 따른 ‘플랜B’를 고민하자고 제안했다”며 “한진해운도 며칠 같이 고민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법정관리 관련 협의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 출항을 중단했더라면 선박 억류에 따른 화주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한진 책임?

임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견에서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대한 정부의 대비책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진해운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한진해운이 선적 화물에 대한 화주, 운항 정보 등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채권단 역시 ‘한진그룹이 설마 한진해운을 버리겠냐’는 안이한 생각으로 사전 대책을 철저히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진그룹이 2014년 한진해운을 인수한 뒤 2조원 규모의 자금을 넣은 만큼 이번에도 대주주가 책임을 지고 살리지 않겠느냐는 생각만 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진그룹과 정부 및 채권단이 서로 대마불사를 믿고 한진해운 지원 책임을 떠넘기다 벌어진 일”이라고 평가했다.

안대규/김일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