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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벌초

입력 2016-09-04 17:47:09 | 수정 2016-09-05 03:05:50 | 지면정보 2016-09-05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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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장례식 등 세상의 모든 의례는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기제’일 것이다. ‘의례의 부재’는 ‘의미의 부재’가 된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전 단계에 통과의례가 빼곡한 이유다. 추석 전 조상 묘에 무성하게 자라난 풀과 잡초를 제거하는 벌초 행사도 한국인들의 중요한 의례다. 금초(禁草)라고도 불렀다. 이맘때면 50대 이상 중·노년층은 물론이고, 20~40대 젊은 층과 어린 학생들까지 벌초 길에 줄줄이 동행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벌초는 제례의 한 절차지만, 손위 어른이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다. ‘토요일 아침 9시까지 벌초 집합’이라는 문자 한 통이면 전국 각지 후손들이 새벽을 가르며 모여든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마디 훈계도 섞어 넣을 수 있다. 봉분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를 불효로 인식하는 관행이 아직도 뿌리 깊다.

집안 행사에 끌려온 모양새지만 젊은이들의 계산서도 그다지 손해는 아니다. 벌초를 끝내면 마음속에 ‘뭔가 할 일을 했다’는 알리바이를 갖추게 돼 정작 추석 연휴에는 해외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의례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의 굴레 역할을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시간씩 낫질을 하던 벌초는 이제는 간단한 예초기로 쉽게 해낼 수 있게 됐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고향에 남은 문중 사람들이 벌초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외지의 친척들은 감사 의미를 담아 용돈을 두둑이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농촌 어른들이 직접 벌초를 하지 못하게 되자, 그나마 젊은 마을 사람들에게 술값이라도 쥐어 주고 부탁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런 행태도 잠깐, 최근엔 벌초 대행업자에게 맡기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직접 벌초에 나섰다 공연히 벌집을 건드리는 등의 사고나 당하는 것도 벌초 대행 문화를 확산시켰다. 여러 개의 무덤을 맡기면 벌초비로만 수십만원이 들어간다.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사촌들 간에 계를 모으고, 그 덕에 친목이 다져지는 긍정적 변화도 있다고 한다.

벌초는 매장문화의 하나지만 묘를 쓰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랜 풍습은 아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화장이 주류였다. 매장 제도가 확산된 것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사림파가 득세한 16세기부터다. 주말 고속도로는 벌초 행렬로 만원사례였지만 오래지 않아 사라질 풍경이 될 것이다. 망자를 봉분 대신 납골당으로 모시고, 수목장 등 다양한 장례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 년이면 벌초도 지나간 풍속이 될지 모른다. 막상 사라지고 나면 그리워질 것이고….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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