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248종에 우리말 이름 붙여줘…미국·영국서도 감탄한 '한국의 파브르' 석주명
해마다 6~7월이면 경기와 강원 일대에는 날개 뒷면이 서울시 지도를 닮은 나비가 날아다닌다. 낮 동안 얌전히 나뭇잎에 앉아 있다가 늦은 오후가 돼서야 잡목 주위를 날아다니는 ‘시가도귤빛부전나비’다. 한국 나비 중에는 ‘시골처녀나비’라는 정겨운 이름도 있다. 5~9월 흔히 보이는 이 나비는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시골 처녀의 수줍은 모습과 닮았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1908~1950·사진)은 일제강점기 상황에서도 우리 산과 들을 날아다니는 이들 나비에 우리말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1947년 자신이 쓴 ‘조선나비이름 유래기’에서 한국에 사는 248종에 이르는 나비에 일본 이름 대신 우리 이름을 지어주고 그 기원을 소개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고등농림학교에서 나비 연구를 시작한 그는 귀국 후 송도고보 교사로 활동하면서 나비 채집과 연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1931년부터 15년간 한반도는 물론 만주, 홋카이도, 사할린 등을 돌며 채집한 나비만 75만마리에 이른다.

그의 나비 표본을 보고 감동한 한 미국 지질학자의 도움으로 1933년부터 미국 하버드대를 통해 다른 서양 학자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8년에는 영국왕립학회가 그에게 연구비를 주고 한국의 나비목록 작성을 부탁했다. 이때 작성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은 지금도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나비 248종에 우리말 이름 붙여줘…미국·영국서도 감탄한 '한국의 파브르' 석주명
석주명은 일본 학자들이 844종에 이른다고 잘못 분류한 한국 나비가 248종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일본 학자조차 나비 학명에 그를 기리는 뜻에서 ‘seoki’라는 이름을 넣었을 정도다.

국내 석주명 연구자인 문만용 전북대 교수는 “선생은 식민 통치에서 대학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매우 체계적으로 연구가 이뤄져 지금까지도 나비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학’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1943년 그는 돌연 제주로 향했다. 사라져가던 제주말이 그때 그의 관심사였다. 2년간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제주방언을 수집해 책으로 내고 제주의 옛 문헌을 연구했다. 제주 민요인 오돌또기를 채보해 알린 것도 주요 업적 중 하나다.

해방 후 그는 전국을 돌며 다시 찾은 한국 땅을 재발견하는 탐사에 매진했다. 7차에 걸쳐 이뤄진 국토구명사업에 참여한 그는 겨울 제주 한라산에 올랐고, 울릉도와 독도까지 다녀왔다. 언어에 관심이 많던 그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 보급에도 힘을 쏟았다.

석주명의 죽음은 한국 과학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자 풀리지 않는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6·25전쟁 당시 국립과학박물관 동물학 연구부장이던 그는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직후인 1950년 10월6일 집을 나섰다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15만마리에 이르는 나비 표본, 원고가 있던 과학박물관이 타버려 재건 방법을 논의하러 가던 길이었다.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와 저명한 석주명 연구자인 시바타니 아쓰히로 일본 교토세이카대 명예교수 등에 따르면 그는 군복을 입은 술 취한 청년과 승강이를 벌이다 총에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 총에 맞기 전 “나는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문 교수는 “선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과 범인에 대한 조사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