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는 호기심에서 출발…노벨상 강요하는 풍토 없어져야"
“한국 과학이 뒤처지고 있거나 퇴보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입니다. 오히려 지난 20년간 가장 빨리 발전한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꿈의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전문가인 김필립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49·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 과학계를 바라보는 부정적 평가가 많은데 이는 바깥에서 보면 틀린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모든 과학 선진국이 적어도 50~100년의 세월에 걸쳐 발전했다”며 “과학의 진정한 발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29일 국내 인터넷 방송 사이트 아프리카TV에 깜짝 출연했다. 그는 “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세계진공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고교 시절 친구인 서수길 아프리카TV 대표의 요청으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두 시간가량 이뤄진 이날 방송에선 숱한 질문이 쏟아졌다. 청소년 시절을 비롯해 연구자로서 삶을 묻는 개인적인 질문도 많았다. 김 교수는 “인터넷 방송의 쌍방 소통이라는 형식이 흥미로웠다”며 “이번 출연을 계기로 유용한 대중과의 소통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가장 유력한 노벨과학상 수상 후보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 노벨상은 그와 비슷한 시기 그래핀을 발견한 영국 과학자 두 명에게 돌아갔다. 선정위원회의 실수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지금도 자신에게 ‘유력한 한국인 수상 후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데 대해 “이제 나는 노벨상과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는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만 연구하는 게 결코 아니다”며 “스포츠 선수에게 언제쯤 올림픽 금메달을 받을 거냐고 묻는 것이 맞지 않듯 연구자에게 노벨상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