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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할아버지 산소로 가는 길

입력 2016-09-04 18:11:31 | 수정 2016-09-05 02:50:42 | 지면정보 2016-09-05 A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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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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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 원 소설가

올해는 유난히 더웠다. 긴 여름이 언제 끝나나 했는데, 올해는 추석이 빨라 다음주 명절이 다가온다. 어린 시절엔 추석 며칠 전에 차례상에 올릴 과일을 우리 손으로 미리 따 준비했다. 요즘은 추석 명절에 맞춰 노랗게 익힌 감이 시장에 나오지만, 마당 안팎의 그 많은 감나무 가운데 어느 나무도 추석 전에 노랗게 익는 감이 없었다. 그래도 차례상엔 감을 써야 하니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도 제일 굵고 노릇노릇해지는 감을 따온다. 단감이 아니라 차례상에 그냥 쓸 수 없다. 뜨거운 물에 하루 담가놓아 침을 들이면 단감이 된다.

밤 역시 예전에 할아버지가 심은 밤나무산의 그 많고 많은 나무 가운데 어느 비탈의 어느 나무가 가장 알이 굵고 빨리 익는지 우리가 먼저 알고 따온다. 장대와 망태를 들고 밤을 따오는 길에 여름에 소를 먹이러 다니며 보아두었던 다래도 따오고 머루도 따온다. 다래도 아직 새파래서 며칠 따뜻한 곳에 두어야 물렁물렁해지며 단맛이 난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이면 집에서 차례를 지낸 다음 우리 형제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그 위의 선대 할아버지 산소로 성묘를 갔다. 산소가 한 곳에 있지 않고 흩어져 있다. 먼 곳의 산소는 오가는 성묘길만 이십리 가까이 됐다. 그런데도 어느 산소 하나 빼놓지 않고 성묘를 다녔다. 그건 할아버지의 신앙과 같은 일이었다.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설과 추석 때면 어김없이 시골집에 모인다. 서울 생활을 한 지 35년이 되는 데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추석 명절과 설 명절 때 고향 집에 안 내려갔던 적이 없었다. 겨울에 대관령 너머에 눈이 많이 와도 어떻게든 가야 했다. 그것은 다른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이면 아버지 어머니와 우리 사형제, 또 한 집안에서 형제처럼 자란 육촌 형님에 그 아들딸까지 스무 명도 넘는 대가족이 2박3일, 때로는 3박4일 연휴 시작부터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시골집에 머문다. 근동에서도 소문난 우리집만의 독특한 명절 모습이기도 하다.

추석날 아침, 우리는 차례를 지낸 다음 여전히 예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산소마다 성묘를 다닌다. 조금 먼 곳은 자동차로 움직이고 가까운 곳은 산길을 걸어서 간다. 이때에도 대부대가 움직인다. 어린 날 우리를 데리고 성묘를 다니시던 할아버지 산소는 할아버지가 심어서 가꾼 밤나무산을 지나서 간다.

할아버지는 열세 살 때 결혼을 해 살림을 난 다음 그 산에 밤 다섯 말이나 심으셨다고 한다. 그때 막 살림을 났을 때는 무척 가난해 먹을 것도 제대로 없을 때였는데, 그래서 동네 사람들 모두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먹으면서 산에 밤 다섯 말을 심는 어린 새신랑을 비웃었다고 한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날 때도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러나 밤을 심은 지 꼭 10년이 됐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20년이 되고 30년이 됐을 땐 그 산에서 딴 밤농사만도 동네에서 가장 큰 부농의 한 해 농사보다 더 큰 수확을 올렸다고 했다.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밤나무산으로 성묘를 가며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그 산에서 밤을 줍는다. 아이들은 추석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밤나무산에 나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이순원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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