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사진)가 해외에 쌓아둔 수익금을 내년에 미국으로 가져오겠다고 1일(현지시간) 밝혔다. 유럽연합(EU)이 130억유로(약 19조2800억원)에 달하는 세금 추징을 결정한 것에 대해선 “쓰레기 같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EU와의 세금전쟁에 미국 정부를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쿡 CEO는 이날 아일랜드 국영방송 RTE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외에 보관 중인 수익금을 미국으로 가져오는 시기는 내년으로 예상한다”며 “미국에 세금을 내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별도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EU 세금폭탄'에 발끈한 팀 쿡 "애플 해외현금, 내년 미국으로 옮길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 해외에서 관리 중인 수익금은 6월 말 기준 2150억달러로 애플이 보유한 현금(현금성 자산 포함) 2320억달러의 92%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쿡은 내년에 가져올 자금 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부 또는 일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이 미국 내 법인세율을 감안해 최소 20억달러의 세금을 낸다고 가정하면 57억달러를 미국으로 들여오게 된다고 추산했다.

쿡 CEO는 최근까지도 해외 수익금 반입 시 35%에 달하는 세금을 물게 된다며 미국으로 자금을 가져올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날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은 EU의 ‘세금폭탄’ 부과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EU는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정부와 짜고 불법적인 세금감면을 받았다며 지난달 30일 130억유로에 이르는 세금 추징을 결정했다.

쿡은 “EU의 세금 추징액은 완전히 잘못된 수치”라며 “어디서 그런 계산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014년 애플이 유럽에서 올린 이익에 대한 세율이 0.005%에 불과했다는 EU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 해 아일랜드에 4억달러의 세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26.1% 세율을 부담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26% 정도가 적정한 세율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WSJ는 애플 대변인의 말을 인용, 쿡 CEO의 이 같은 발언이 미국 정부와 의회가 내년에 세법을 개정해 법인세율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반영했다고 전했다. EU에 세금을 추징당하지 않고 차라리 미국으로 돈을 가져오겠으니 정부도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WSJ는 애플 외에 구글과 아마존 등이 해외에 쌓아둔 돈도 2조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기업이 해외 수익금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 외국에서 낸 세금만큼 공제해주기 때문에 미 정부의 세수는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은 부정직하며, 쿡 CEO의 행동도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애플이 정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금을 피하려 한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낮은 법인세율로 다국적 기업을 유치해 다른 나라에 해를 끼치고 있다”며 “EU가 회원국의 세율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