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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시전상인의 독점권을 철폐한 신해통공(辛亥通共)

입력 2016-09-02 16:35:41 | 수정 2016-09-02 16:35:41 | 지면정보 2016-09-05 S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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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농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삼고 중시한 농본주의 사회였다. 반면 상업은 말업(末業)이라 해 억제했고, 그에 종사하는 상인도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가장 천시받는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상업에 대한 국가 통제 역시 대단해서 나라에서 지정한 곳 외에 장을 개설하고 상거래하는 것을 금지했다. 상업이 발달하면 백성들이 이문(利文)만 쫓고 농업은 등한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도인 한양에서는 허가받은 상인만이 물건을 팔 수 있었다. 육의전으로 대표되는 시전상인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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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상인이란 국가가 도성 내에 설치한 상점인 시전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을 말한다. 이들은 한양과 그 밖 10리에 이르는 지역까지 특정 물품에 대한 판매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초기에는 일물일시(一物一市)라 해 하나의 상품에 한 명의 시전상인만을 두는 형태로 운영됐다. 즉, 시전상인끼리 서로 다른 상품을 취급하도록 해 완벽한 독점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금난전권이라는 강력한 행정권까지 부여해 시전상인 스스로 자신의 독점적 위치를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금난전권은 말 그대로 난전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여기서 난전이란 시전상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물건을 팔거나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로, 불법적인 거래로 상업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시전상인들은 자신의 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금난전권을 강력하게 사용했다. 우선 난전을 적발할 경우 이를 폐쇄하고 판매하던 물건도 압수할 수 있었다. 일부 시전상인은 난전 단속을 위해 자경단과 같은 자체 조직을 거느리기도 했다. 정부 역시 직접 난전 단속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렇게 적발한 난전의 물품은 벌금 명목으로 몰수했고 물품이 벌금보다 적을 경우에는 난전상인을 곤장형으로 다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이토록 막강한 상업적 특권을 시전상인에게 부여했던 것일까. 조선시대 시전상인은 물건을 백성에게 판매하는 한편 일정한 형태의 국역을 부담하고 있었다. 우선 거래세에 해당하는 상세와 시전상점을 임차한 대가로 지급하는 공랑세를 국가에 납부해야 했다. 또한 왕실이나 관아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의무도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정부에서 행하는 부역에도 참여해야 했는데 국가 차원의 행사, 공공시설의 조성 및 개·보수, 환경미화 등의 사업에 시전상인이 동원됐다. 즉, 정부는 재정적·행정적 이유에서 시전상인의 역할이 필요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금난전권이라는 권리를 그들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제도든 권한이 부여되고 그것이 강력해지면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금난전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정부와의 공생 속에 시전상인에게 특권이 쏠리면서 곳곳에서 그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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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장이 독점화됨에 따라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야기됐다. 오늘날의 경제에서도 독점이 발생할 때 우려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격이다. 독점 시장의 상품 가격은 대부분 경쟁 시장에 비해 높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시전상인이 높은 가격을 불러도 백성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특정 상품을 판매할 수 있어 다른 곳에서는 같은 물건을 구하려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그러면서 구매 의사가 있음에도 여력이 안 되는 백성들은 소비를 포기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편, 원재료마저 독점화되면서 생산자 역시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도시 인구 증가로 수공업과 단순상품 생산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한다. 하지만 생산의 바탕이 되는 재료가 시전상인의 손아귀에 있다 보니 물건을 만들기도 쉽지 않고, 만든다고 해도 원가가 만만치 않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혹 만들려는 상품이 시전상인이 이미 취급하고 있는 것이라면 합법적인 판매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였다. 결국 시전상인과 금난전권은 조선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만 입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상업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전상인과 금난전권이라는 막강한 통제 속에서도 난전은 벌어졌고 자유 거래가 불가능했던 조선의 상업도 더디지만 조금씩 변모해갔다. 이런 흐름 속에 17세기 이후 조선의 상업에 일대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선 대동법의 시행으로 상거래가 활발해졌다. 백성이 낸 세금으로 정부 조달품을 구입하는 공인(貢人)이 등장하면서 상업의 필요성이 증대된 것이다. 또한 상평통보가 유통되면서 화폐를 매개로 하는 거래도 성행했다. 여기에 이앙법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시 인구의 증가로 상업 발달의 기초가 마련됐다.

이처럼 상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금난전권을 통한 상업 통제가 계속되자 이를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정조 때에 이르러 ‘신해통공’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이 조치는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조선의 상업활동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를 맞이했다. 신해통공은 정조가 시행한 탕평·개혁정책의 일례로, 당시 백성의 생활고를 일시적으로 해결해 줬을 뿐만 아니라 이후 벌어지는 상업의 발전과 자본가의 출현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해통공은 그 한계도 분명한 정책이었다. 시전상인의 독점력은 붕괴시켰지만, 사상(私商)이라는 새로운 독점상인의 출현을 야기해 그 폐해가 조선의 멸망 때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됐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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